[데스크 시각/박현진]가계부채 ‘출구’도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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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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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하면서 한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축제가 막을 내렸다. 한국축구팀의 선전을 염원하던 각종 광고는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카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등 사이버 공간에서 월드컵 금단(禁斷) 현상을 호소하는 누리꾼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월드컵 금단증세 정도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폭풍우를 막기 위해 쳐둔 보호막을 거둬들이는 일은 국민들에게 금단증세를 넘어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밝히면서 사실상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하반기에 시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2008년 하반기에 닥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과도하게 시중에 푼 자금과 각종 비상정책을 제자리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고통이 커질 것이 분명한 만큼 출구전략의 시행은 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 못지않게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 정부도 이를 인식한 듯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의 주요 키워드로 ‘친(親)서민정책’을 내걸었다. 저소득층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고 미소금융을 확대해 출구전략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체 가구의 66.7%(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중산층에 미칠 여파를 줄일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을 위협할 출구전략의 후폭풍은 여러 방향에서 닥칠 것이다. 이달부터 각종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중단되고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데 따른 고용불안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이보다 더 광범위하게 충격을 줄 사안은 금리인상으로 이자 상환에 허덕일 가정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주 역대 최저 수준인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반년 만에 0.01%포인트 올리면서 시중금리 인상의 신호탄을 올렸다. 가계부채가 3월 말 기준 739조1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가운데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경제에 미칠 여파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후유증을 줄일 대책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하반기 경제에 미칠 가장 큰 위험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꼽으면서도 정작 관심은 가계경제가 아닌 금융권에 두고 있는 듯하다. 추가적인 대출을 억제해 금융시스템의 부실을 막겠다는 의지는 강한 반면 가계 부실을 막을 ‘국민 금융안전망’에 대한 묘안은 뒤로 미뤄두고 있는 것이다.

가계는 금리인상기에 소득이 늘지 않고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없다면 결국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을 유일한 대안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에는 그 출구가 막혀있다는 것이다. 5월 수도권의 부동산 거래량은 지난 4년 평균보다 60%가량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만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줄어들지 않은 것도 부동산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정부도 부동산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그 시기가 더 늦어서는 곤란하다. 집은 팔리지 않고 이자만 계속 불어나 밤잠을 설치는 중산층들을 그대로 둔 채 출구전략을 단행하는 일. 가계의 고통을 넘어 경제 전반에 깊은 주름살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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