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이원모 KMI지식경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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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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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만들기엔 정년 없어…네트워크로 정보교류 돕죠”

이원모 KMI지식경영원 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에서 열린 강남경제인포럼 6월 조찬모임에서 한 회원과 반갑게 
대화하고 있다. 이 원장은 네트워킹의 비결에 대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받을 수도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변영욱 기자
이원모 KMI지식경영원 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에서 열린 강남경제인포럼 6월 조찬모임에서 한 회원과 반갑게 대화하고 있다. 이 원장은 네트워킹의 비결에 대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받을 수도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변영욱 기자
《어느덧 ‘평생직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힘든 고용구조가 자리 잡았다. 평생직장은커녕 한 일터에서 정년을 맞는 직장인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나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속도로 굳어진 셈이다. 이렇다 보니 정년퇴직 자체가 큰 행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상 모든 직장인에게 조기퇴직이 예고된 상황에서 제2의 직장생활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은 인생 이모작에도 잘 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원모 KMI지식경영원 원장(59)은 기존 일터에서 하던 일을 명예퇴직 후 ‘1인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네트워킹의 타고난 전문가

이 원장은 197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부에 영어특기자 특채로 입사했다. 전경련에서 일하던 시절 그의 무기는 영어와 테니스였다. 영어 실력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전공도 영문학과로 선택했고 ‘파인트리클럽’이라는 대학연합 영어회화클럽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파인트리클럽의 회장을 맡으면 3개월간 영어로만 각종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회장 직을 마치고 나니 영어를 쓰는 데 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11일 KMI지식경영원 강남경제인포럼 회원들이 6월 조찬모임이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이원모 원장. 변영욱 기자
11일 KMI지식경영원 강남경제인포럼 회원들이 6월 조찬모임이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이원모 원장. 변영욱 기자
테니스는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구력이 30년에 이른다. 군 복무시절 테니스 라켓을 잡아 봤지만 굳게 결심하고 배운 것은 전경련 시절부터였다. 그는 “외국 기업인 중에 테니스를 좋아하는 이가 아주 많았다”며 “땀을 흠뻑 흘리며 게임을 하고 나면 한결 더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전경련 시절 맺은 인연 나에겐 큰 재산이죠 회원 150명 모임으로 키워”

그는 가는 곳마다 조직을 만들었다. 전경련 국제경영원 근무 초기에는 글로벌비즈니스스쿨을 개설했다. 국내에 있는 매킨지와 보스턴 같은 컨설팅업체를 찾아가 “영어로 강의할 기회를 주겠다. 강의를 맡으면 국내 기업인들과 친분을 쌓아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득했다. 예비 수강생들에게는 “일주일에 두 차례 영어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경련 회원상담실 근무 때는 기획조정실 협의회를 구성했다. 당시 30대 그룹 기조실 임직원들이 참가 대상이었다. 그때 얼굴을 마주하던 임직원들은 지금 각 그룹 계열사의 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전경련 시절 확보한 국내외 네트워크의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50억 원에 이른다고 큰소리치고 다닌다”고 말했다.

○ 네트워킹을 1인 비즈니스로

이 원장은 1993년 전경련 도쿄(東京)사무소장을 지낸 뒤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고경영자교육을 주로 담당하던 국제경영원에서 그는 강남교육센터를 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주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벤처기업 경영자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는 2003년 말 국제경영원 강남교육센터 소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나이가 52세였다. 그는 이듬해 3월 곧바로 ‘KMI지식경영원’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와 경기 분당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중소벤처기업 경영인들을 회원으로 삼았다. 마치 강남교육센터를 분사(스핀오프·Spin-off)한 셈이었다. 그는 “신생 벤처기업 경영자들이 고민하던 문제들이 내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될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출범 초기에는 상근직원을 2명 두었지만 지금은 혼자서 너끈하게 운영하고 있다. 큰 행사 때는 그가 알고 지내는 젊은 도우미들이 자원봉사로 나선다. 처음에는 회원이 고작 20, 30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오너클럽 50명을 포함해 150명으로 늘어났다. 산하에 강남경제인포럼과 글로벌비즈니스포럼, 바이오지식포럼, 우량기업연구회, 일본연구포럼 등의 분과별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며 “회원들 각자가 필요한 항목을 모임에서 주고받으면서 전체적으로 시너지를 내도록 조정(코디네이트)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금 활동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회원들이 교육도 받고 책도 읽고 쉬기도 하는 클럽 하우스를 서울 인근에 세울 계획을 품고 있다. 그는 후배들에게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 직장을 일찍 그만두더라도 생활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며 도전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이원모 원장은 혼자 힘으로 회원 150명이 가입한 조직을 이끌어 가고 있다.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1인 기업’의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역시절 경영자교육 실무경험과 지식교류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 창출 능력 그리고 대부분의 사무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 원장의 노후대비 보유자산 중 90% 이상이 부동산에 있고 10%의 금융자산도 대부분 주식 개별종목에 직접 투자된 상태다. 자산관리 원칙으로 보나, 부동산시장 전망으로 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 60대로 넘어가는 나이를 감안하면 부동산과 금융자산 비율을 5 대 5 정도, 또 금융자산 중 리스크가 따르는 투자상품과 원리금이 보장되는 저축상품의 비중을 5 대 5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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