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들 ‘맞춤 공략’으로 다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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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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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무역 한계 부닥치자 각국 틈새시장 개척

더운나라 軍에 방한복 수출- 해외훈련 많은 특성 간파
풍력-태양광발전단지 수주- 정부-원주민 갈등 중재 한몫
가스전 인근에 플랜트 건설- 발굴후 3년 설득작전 주효


지난해 삼성물산 직원들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인디언보호구역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2008년부터 삼성물산이 온타리오 주 정부에 제안해 추진해 온 풍력, 태양광발전단지 용지에 이 지역이 포함된 것이 발단이었다. 발전단지 건설에 반대하는 원주민(인디언)과 주 정부 사이의 갈등이 커져 소송까지 갈 지경에 이르자 삼성물산 직원들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인디언 전통춤까지 배워가며 원주민과 친해진 뒤 일자리 제공을 약속한 끝에 동의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결국 온타리오 주 정부와 지난달 60억 달러(약 7조 원) 규모의 발전단지 프로젝트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

○ ‘컨트리 마케팅’으로 재도약

종합상사의 재도약이 눈부시다. 종합상사는 1970, 80년대 ‘수출한국의 첨병’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판로를 뚫어온 개척자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제조업체가 직접 수출까지 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상사들은 2000년대 초반 자원 개발에 눈을 돌렸다. 최근에는 신흥개발국의 생산시설과 사회간접자본 설립에 참여하거나 해당 국가에 필요한 것을 먼저 제안해 사업을 따내고 있다.

LG상사는 지난해 말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최대 가스전인 ‘욜로텐-오스만 가스전’ 인근에 ‘탈황(脫黃) 플랜트공장’ 건설을 수주했다. 총금액 14억8000만 달러(약 1조7300억 원)로 투르크메니스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수의계약으로 따낸 것은 LG상사가 3년 가까이 ‘공들여’ 얻어낸 성과다. 가스 탈황은 가스관이 부식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수 공정. LG상사는 2006년 이 가스전이 발견되자 사업 기회를 ‘감지’하고 이듬해 투르크메니스탄에 지사를 설립했다. 그 후 꾸준히 정부 인사들과 접촉하며 플랜트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국가별 맞춤형 ‘컨트리 마케팅’으로 미래 사업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동남아 군대에 방한복을 팔기도

종합상사는 여전히 ‘개척정신’의 대명사다. 코오롱 아이넷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군(軍)에 방한복 400만 달러어치 이상을 팔았다. 동남아국가인 싱가포르에 방한복이 필요할 것 같지 않지만 싱가포르 군대의 독특한 체계를 알고 나면 이해가 된다. 국토가 좁은 탓에 전차, 전투기 등 각종 무기를 해외에 배치하고 군인들도 대만과 브루나이, 뉴질랜드, 호주, 미국 등에서 파견훈련을 받는다. 코오롱아이넷은 이런 싱가포르군의 특성을 파악했다. 납품하게 된 과정도 독특하다. 코오롱 아이넷은 “이전에는 미군이 쓰는 제품을 싱가포르군이 사용했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로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해 납품하게 됐다”고 밝혔다.

종합상사는 정부시스템까지 수출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9월 아프리카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 유무선 행정망을 구축하는 3100만 달러 규모의 전자정부 구축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 회사는 2007년 앙골라, 2008년 세네갈 등 매년 아프리카의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세계 1위 수준인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수출과 연결한 것이다.

○ 막강 네트워크와 정보력이 무기

김승원 한양증권 연구원은 “종합상사는 강력한 해외 네트워크와 막강한 정보력이 무기”라며 “이를 활용해 과거 ‘트레이더(trader·중개자)’의 개념에서 벗어나 자원개발, 건설 등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디벨로퍼(developer·개발자)’로 사업 형태를 바꿔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2008년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미국 테일러에너지가 소유한 멕시코 만 해상유전을 인수할 때 정보력을 발휘했다. 삼성물산은 이 회사 필리스 테일러 회장이 작고한 남편 페이트릭 테일러 전 회장이 하던 장학금 자선사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자선사업을 계속하겠다며 테일러 회장을 설득했다.

농장과 광산도 운영한다. 현대중공업에 인수된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중공업이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 친환경 영농사업을 이달에 넘겨받기로 했다. 2012년까지 모두 5만 ha 규모의 농지를 확보해 6만 t의 친환경 옥수수와 콩을 생산하는 식량기지 사업이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1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타이어산업을 겨냥해 고무나무 농장을 경영하고 있고 LG상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조림지와 팜농장, 유연탄광을 운영하고 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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