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신청 하러 창원으로 간다?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코멘트
지역별 통과율 최대 11%P 차이

부산에 거주하는 A 씨는 금융기관에 진 빚 3억여 원을 개인 파산신청을 통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로 주소지를 옮겼다. “부산 일대의 법원은 파산신청 처리도 늦고 인용률이 낮으므로 수도권으로 옮기라”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랐다. 실제로 서울 소재의 한 법원은 A 씨의 파산신청을 받아들였다. A 씨는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됐다. A 씨의 지인 10여 명도 같은 방법으로 파산신청을 했다고 한다.

A 씨처럼 파산 인용률이 높은 법원의 관할구역으로 ‘원정’ 파산신청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국의 법원별로 파산신청 인용률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전국지방법원별 개인파산 재판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43만1800여 건의 파산신청 중 41만5000여 건(96.1%)이 받아들여졌다. 특히 창원지법의 파산재판부는 같은 기간 처리한 1만3823건 중 1만3587건을 받아들여 인용률이 98.3%나 됐다.

파산신청 96% 통과… “법원, 관리강화 필요”

이어 서울과 춘천, 청주, 수원지방법원은 97%, 의정부와 전주는 96%에 달하는 등 지방법원 14곳 중 12곳의 인용률이 90%를 넘었다. 이에 비해 부산과 울산의 인용률은 각각 88.9%, 87.5%로 다른 지역보다 약 10%포인트가 낮았다.

매년 10만 건 이상 접수되는 개인파산신청을 담당하는 전국의 파산재판부는 30개로 담당 판사는 26명에 불과하다. 판사 1인당 연평균 1851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다. 파산재판부의 판사들이 일년 내내 하루도 안 쉬어도 하루 평균 5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법원 관계자는 “2007년 3월부터 파산신청자가 실제 거주하는지 확인해 위장전입을 통해 파산신청을 한 사건의 경우 거주지로 신청 사건을 넘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파산신청이 민사재판임을 이유로 재파산 신청자 현황 및 허위 파산 선고 사례 등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회생의 기회를 준다는 제도의 취지는 합당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실한 채무자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면서 금융기관 및 국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법관이 ‘하이패스(Hi-Pass)’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