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키공사 배로 늘었는데, 비리 막을 보완책은 국회도 못가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10년 이상 영업을 해왔는데 내가 ‘관리’한 턴키공사 심사위원 중에서 돈 받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 건설업체에서 공사 수주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 씨의 말이다. 그는 “처음에는 돈 받는 것을 꺼려도 몇 차례 심사위원에 들어가고 각종 접대 등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 결국 업계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며 “돈을 주더라도 뭉칫돈이 건너가면 자금추적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평가가 끝난 뒤 1000만 원 단위로 몇 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건넨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뇌물수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턴키공사 물량이 올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공공투자 확대로 예년의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비리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대책이 없어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등 올해 발주 규모 총 20조 예상
‘불법땐 업체 등록말소’ 건산법 개정안 처리 시급

○ 턴키공사 수주전도 치열

대형 건설업체들은 사활을 건 턴키공사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경기침체로 아파트 공사가 곳곳에서 보류되면서 일감이 크게 줄었기 때문. 올해 5월 1950억 원 규모로 발주된 무주태권도공원 건립공사에는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건설), 대우건설 등 건설업계 ‘빅3’가 모두 나서서 막판까지 팽팽한 경합을 벌였다. 7월 중순 1300억 원 규모로 발주된 김포한강신도시 11블록 공사에는 이 3사에 GS건설, 대림산업까지 가세해 치열한 수주전을 펼쳤다.

○ 현행 제도로는 건설사 처벌 어려워

문제는 턴키공사 입찰 과정의 비리가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12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뇌물 등의 혐의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는 7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전부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들뿐이다.

더 큰 문제는 뇌물제공 혐의가 밝혀져도 돈을 건넨 직원만 처벌받을 뿐 해당 건설업체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검찰은 서울지역에서 진행된 한 공사와 관련해 국내 굴지의 7개 건설업체를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업체들은 1심에서 무죄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는 등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고 대법원은 5월 말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건설사 직원 등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주거나 받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건설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업계 관계자는 “유죄가 확정되면 해당 업체들은 최대 1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될 예정이었다”며 “1년 영업정지면 회사 문을 닫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건설사들로서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부 보완책은 국회에도 못 올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2회 이상 뇌물수수로 적발되는 경우 담당자에게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해당 업체는 등록을 말소하기로 한 건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규제심사 등을 거쳐 9월에나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종업원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해당 회사도 형사처벌할 수 있는 양벌(兩罰)규정에 위헌결정을 내려 건설사를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며 “건산법 개정안이 빨리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건설사의 불법 로비를 막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관급공사 최저가낙찰제 확대
정부, 2012년으로 늦추기로

한편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정부는 정부 발주 공사에 최저가 낙찰제(가장 적은 공사비를 써낸 업체가 공사를 맡는 입찰방식)를 적용하는 대상공사 확대 시기를 2012년으로 늦추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발표한 ‘정부계약제도 개선방안’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저가 낙찰제는 당초 1000억 원 이상 공사에만 적용되다가 2006년에 300억 원 이상으로 대상공사가 확대됐고 지난해에 100억 원 이상으로 낮춰질 예정이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턴키공사:

공사비 300억 원 이상 사업 가운데 설계와 시공이 복잡한 공사를 시공업체가 설계까지 도맡도록 하는 것이다. 매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100여 건, 10조 원 규모 정도를 발주한다. 올해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비롯해 경인 아라뱃길(경인운하), 새만금방수제 같은 굵직굵직한 공사가 잇따라 발주될 예정이어서 전체 규모가 20조 원을 넘을 것으로 건설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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