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주택 ‘시세차익 환수’ 딜레마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거두자니 서민주택 취지 위배
놔두자니 투기수요 과열 우려

9월 말부터 사전 청약이 예상되는 서울 강남지역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가 인근 아파트 시세의 절반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분양가를 크게 낮춰 주변 집값을 끌어내리겠다는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당첨자에게만 불로소득을 안겨주고 이에 따라 청약 과열을 빚는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서울 강남구 세곡지구와 서초구 우면지구에 공급될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가 3.3m²당 1300만 원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토지 조성 원가와 건축비 등을 감안해 추정한 가격으로 인근 아파트 평균 거래가의 절반을 크게 밑돈다. 9일 현재 강남구는 3.3m²당 평균 3120만 원, 서초구는 2543만 원이며 세곡지구와 비교적 가까운 강남구 수서동은 평균 2077만 원, 일원동은 2674만 원 선이다. 우면지구와 가까운 서초구 양재동은 3.3m²당 1988만 원, 우면동은 2200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서울 강남권에서는 재건축을 제외하고는 신규 아파트 공급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들 아파트가 공급되면 청약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보금자리주택은 인근의 소형 아파트보다 최소 3억 원 이상 쌀 것으로 예상된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보금자리주택은 인기지역에 싼 아파트를 공급해 주변 시세를 떨어뜨린다는 취지는 거두지 못하고 최초 당첨자에게 이벤트성으로 엄청난 시세 차익만을 안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도 이런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낮으면 차액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분양 신청자가 채권을 사도록 하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채권입찰제는 85m² 이상 주택에만 적용하도록 돼 있어 85m² 이하 보금자리주택에 적용하려면 관련 법령 개정 등과 같은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또 채권입찰제가 적용되면 사실상 시세와 별 차이가 없어져 싼값에 고급서민주택을 공급하고 주변 시세를 끌어내리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릴 수가 없다는 내부 반론도 나오고 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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