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酒… ○○아줌마酒… 전통주, 산업으로 키운다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 우리 술 경쟁력 강화 범부처 차원 추진

1인당 술 소비 세계최고… 맥주-소주가 90% 넘어
탁주-약주 점유율 6%대… 세계화로 와인에 도전

#장면1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만찬의 건배주는 상황버섯 발효주인 ‘천년약속’이었고 후식주는 ‘복분자주’였다. 하지만 식사 중간에 제공된 술은 미국산과 칠레산 와인이었다.

#장면2 일본 청주는 최근 세계적인 붐을 타고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수출상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일본 청주를 뜻하는 ‘SAKE(사케)’라는 용어가 ‘SUSHI(스시·초밥)와 함께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전통주는 세계무대에서 이렇다 할 이름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마련하고 있는 ‘우리술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은 전통주를 이런 ‘수난’에서 구해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규제를 줄이고 지원을 늘려 △△할머니주, OO아줌마주 같은 다양한 우리술이 나오게 하자는 것. 또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한국의 대표 술을 키워내야 한다는 판단도 한몫을 했다. 한국 전통주가 없는 한식은 와인 없는 프랑스 요리나 청주 없는 일본 요리처럼 허전하다는 것이다.

○ 전통주 활성화 가로막는 규제

전문가들은 전통주 산업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제를 꼽고 있다. 양조업체가 갖춰야 하는 시설의 규모 규제가 대표적이다. 탁주, 양주, 청주 등을 제조해서 팔려면 원료를 발효시키는 곳인 ‘국실’의 크기는 6m² 이상, 원료에 물 등을 섞어 완성된 술로 만드는 ‘담금실’의 크기는 10m² 이상이어야 한다.

단순히 수치만 보면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크기일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 따로 건물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소규모 업체에는 큰 부담이 된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조업체별로 갖춰야 할 시설규모를 규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규모가 영세한 일부 관광농원 등은 시설투자능력이 없어 전통주 사업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전통주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전통주를 만들어 팔려면 주류 제조에 필요한 농산물의 50% 이상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인기가 높은 막걸리의 경우 제조자에 따라 전통주에 속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

전통주에 대한 높은 세율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7월 주세법 개정으로 전통주 주세가 50% 감면됐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와인에 대해 0%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농림수산식품부 측 설명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통주로 인정받을 경우 탁주 세금이 2.5%가량, 약주 청주 과실주 세금은 15%가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주에 대한 세율을 낮추는 방안에는 정부 내부에서도 강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외국산 주류와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기 쉽고, 심할 경우 통상마찰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 전통주 수난 100년사

현재 한국은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전통주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 국세청의 ‘국내 주류별 출고 동향 및 주세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국내 술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전체 술 가운데 맥주가 61.4%, 희석식 소주가 30.5%로 90% 이상을 점하고 있다. 반면 전통주는 탁주와 약주를 합해도 6%대에 그친다.

더구나 관련 규제와 육성법의 부재로 술 시장에서 전통주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1990년만 해도 술 출고량 가운데 탁주가 19.6%를 차지했지만 18년이 지난 2008년 탁주의 비율은 5.2%로 거의 4분의 1로 줄어든 반면 맥주와 소주의 비중은 늘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 술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주류 수입액은 2006년 4억8086만 달러에서 2008년 6억7030만 달러로 39.4% 늘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통주를 ‘핍박’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통주에 대한 규제는 1909년 일제의 영향력 아래 제정된 주세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는 당시 주류의 종류를 약주, 탁주, 소주, 일본청주로 단순화했다. 일반 가정에서 만드는 ‘가양주’는 제조를 금지하고 1917년에는 자가 양조를 전면 금지해버렸다. 주류세를 쉽게 징수하기 위해 종류를 단순화하고 전통 문화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 “막걸리를 보라”

정부가 전통주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은 당위론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막걸리의 선전(善戰)에서 성공의 싹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성공 사례는 규제 완화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2001년 판매구역 제한규정을 없앴고 2003년에는 6% 이상이던 알코올 도수를 3% 이상으로 완화했다. 2004년에는 과실 원액을 20%까지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 덕분에 소비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다양한 막걸리가 쏟아져 나왔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막걸리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 술은 충분히 세계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막걸리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은 “일본에서 막걸리 인기가 높다지만 한국 막걸리는 세계적 술들에 비해 ‘싸구려’로 분류되기 쉽다”며 “전국 700여개에 그치는 막걸리업체를 활성화하면서 양조장을 현대화하고 인력도 키워 부가가치가 높은 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통주 산업 육성은 한국 농가의 생산성 증가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농식품부는 쌀 10kg을 가공할 때 부가가치가 즉석밥인 ‘햇반’은 10만 원, 떡은 12만5000원인 반면 증류주는 21만3000원일 것으로 분석했다. 포도 10kg을 가공할 때도 포도주스가 3만1000원이었던 반면 포도를 활용한 증류주는 부가가치가 15만 원이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민속주 ‘전통식품 명인’이 제조한 술로 전통문화의 전수·보전 등에 필요하다고 인정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문화재청장, 시도지사 등이 추천해 주류심의회의 심의를 거친 주류.

○ 농민주 농식품부 장관이 추천하는 농업인, 생산자단체 등이 스스로 생산하는 농산물을 주원료로 해 제조하는 주류로 양조에 필요한 원료의 50% 이상을 직접 생산해야 한다.

○ 전통주 민속주와 농민주를 포괄하는 개념. 따라서 현행법에 의하면 전통주 제조는 전통식품명인이거나 스스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인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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