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거리 비례 車보험 도입 ‘덜컹’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주행측정기 너무 비싸고
개인정보 노출 우려도 커
시행시기 내년서 2년 늦춰

핵심 녹색금융정책의 하나로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운행거리 연계 자동차보험’ 제도가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이르면 내년 초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던 운행거리 연계 자동차보험 제도는 2012년경에나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운행거리 연계 자동차보험은 자가용 운행을 해 탄소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운전자에게 일종의 ‘벌금’을 물린다는 원칙에 따라 과거 1년간 주행거리를 반영해 보험료를 깎아주거나 더 받는 보험료 책정 방식이다. 정부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운전자가 실제 운행한 거리에 따라 자동차 보험료가 차등 부과되기 때문에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난항의 핵심은 주행거리를 측정하는 방식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차량에 블랙박스를 달아 주행거리를 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미터기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 역시 7월부터 발 빠르게 블랙박스 장착 차량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보험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시판되는 블랙박스 가운데 주행거리를 측정할 수 없는 저가형 모델도 값이 20만 원을 넘어 몇천 원의 보험료를 할인받기 위해 이 장비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차량자가진단(OBD) 단자를 이용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OBD란 차량 배출가스의 오염상태를 스스로 진단하는 장비. OBD 단자에 단말기를 달면 운행거리는 물론 위치추적까지 가능하다. 특히 가격을 2만 원대까지 낮출 수 있어 블랙박스보다 비용 부담도 적다. 하지만 이 방식을 택한다면 OBD 단자가 설치되지 않은 2000년 이전 생산 차량은 여전히 비싼 블랙박스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특히 블랙박스 방식이나 OBD 단자 활용 방식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들 장치를 설치하면 보험사에서 운전자의 현재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운전자 차량에 위치 등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달지 못하도록 했다.

운행거리를 간접적으로 반영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요일제에 참여하는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자동차에 부착된 요일제 스티커에 주파수식별(RFID) 태그가 붙어 있어 운전자가 실제 요일제에 참여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민간업체에선 운행거리를 간접적으로 반영해 보험료를 할인해주도록 교통카드 사용기록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많이 사용하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운전자의 교통카드를 사용해도 이를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운행거리 측정 장비의 비용 문제나 개인정보 유출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며 “아직 묘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언제쯤 운행거리 측정 방식이 확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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