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수출독일’… 새겨야 할 ‘수출한국’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수출 의존하던 경제 세계 수요 급감하자 ‘휘청’

獨 1분기 성장률 ―3.8%…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악

“수출의존도 더 큰 한국, 서비스업 육성-시장 확장 시급”

수출대국 독일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흔들리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던 독일의 ‘수출주도형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일은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급락했고 금융권 부실도 심각한 상태다.

한국은 독일과 일본 경제를 모델로 삼아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라인 강의 기적’에 비견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내수의 뒷받침 없이 수출로 외끌이 성장을 해온 독일이 세계적인 경기침체 국면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내면서 한국도 경제발전 모델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수출로 흥한 경제, 수출로 무너져

현재 독일은 여러 면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고생한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하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 전체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위험이 크다”며 “그 시작은 독일이 될 것이고, 독일 경제의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독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 1990년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냈던 독일은 2000년대 글로벌 경제 호황에 힘입어 매년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2004∼2007년 독일의 순수출이 독일 경제 성장의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출의존형 성장 모델은 이번처럼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감하고 수출시장이 무너지면서 치명적인 취약점을 드러냈다. 독일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3.8%(연율 ―14.4%)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성장률이 전기 대비 ―1.5%, 영국이 ―1.9%, 프랑스가 ―1.2%인 것을 보면 독일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로 1998년 최악의 경기침체를 맞은 한국은 2000년 이후 글로벌 경기 호황에 따라 수출이 큰 폭으로 늘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5.1%로 곤두박질쳤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육성 모델에서 벗어나 서비스업을 키우기 위한 실질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천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서비스업을 육성하자는 말은 그동안 많았지만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 의료, 법률 등 서비스업의 장벽과 규제를 풀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국가적으로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보다 더 빨리 영미식 금융모델로 변화한 독일

독일은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이나 영국 같은 부동산 버블이 없었지만 이들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 은행들이 5000억 달러(약 635조 원)의 부실자산을 상각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중은행, 상호협동조합, 국영저축은행을 3대 축으로 하는 독일의 은행시스템은 과도한 규모의 차입금을 끌어다 고위험 투자를 하는 영미계 은행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2000년대 수출 호황으로 현금이 쌓이자 독일 은행들도 미국 은행들처럼 고수익을 좇아 부채담보부채권(CDO) 등 파생상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독일 고유의 장점을 버리고 너무 빨리 영미식 금융시스템으로 옮겨가면서 리스크 관리 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최근 독일 금융감독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은행들의 CDO 등 위험채권 투자액은 무려 8160억 유로(약 1조2200억 달러)다. 독일 최대 부동산대출 은행인 히포는 2680억 유로가 물려 최근 국영화됐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시중은행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국유은행인 우리은행이 자산불리기 경쟁을 주도하고 CDO,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해 현재까지 손실액이 1조6300억 원에 이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중일 FTA 맺어 ‘내수 같은 수출시장’ 키워야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2008년 기준 GDP 대비 48.4%로 독일(35.2%)보다도 높다. 반면 일본은 수출 강국인데도 내수 기반도 탄탄해 수출의존도가 15.8%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서비스업 중심으로 내수를 키우는 동시에 현재의 수출 구조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중국, 일본과 연대해 시장을 키우고 통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장은 “독일은 사실상 통합된 시장인 유로 지역 내 교역 비중이 60%에 이르기 때문에 내수에 가까운 수출이 많지만 한국은 안정성이 높은 수출시장이 없어 대외 변동성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는 지름길은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과 공동시장의 창출이다. 김 실장은 “유로 시장 같은 이점을 누릴 수 없는 한국은 한중일 FTA 체결을 통해 동북아 시장을 단일화하고, 한중일 통화스와프나 환율 고정 등을 통해 금융도 통합해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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