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대출 받아 생활비로 주식투자로…

  • 입력 2009년 5월 6일 02시 58분


금리낮고 조달쉬워… 생계형 대출 60~70%대

경기침체 지속 부동산값 하락땐 부실화 우려

#1. 서울 노원구에서 도배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44)는 최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3000만 원을 빌렸다. 이 돈으로 제2금융권에서 높은 금리로 빌린 대출을 일부 갚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고 있다. 김 씨는 “이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도 벌기 힘들다”며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저렴하고 대출 받기도 쉬워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2.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서 중고 수입차를 판매하는 이모 씨(40)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다. 그는 “경기를 민감하게 타는 업종 특성상 지난해 말부터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며 “올해 들어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비교적 잘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사업 운용자금으로 쓰려고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 2월잔액 3조 3163억원 증가… 2006년 11월 이후 최대

올해 1분기(1∼3월)에 은행들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했지만 이 중 상당수는 주택 구입자금이 아니라 생활비나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해 빌린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장사가 안되는 자영업자나 가장(家長)이 실직한 가계에서 당장 쓸 생활비나 교육비를 조달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4조7980억 원으로 1월보다 3조3163억 원 증가해 월별 증가 규모로는 2006년 1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맞물려 부동산시장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것 외에 개인의 생활자금 및 사업자금 수요가 가세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동아일보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올해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용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도 한은의 추정과 일치한다. 국민은행의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4조4107억 원 중 주택구입 용도는 1조7009억 원으로 전체의 38.6%였다. 나머지 2조7098억 원(61.4%)은 비구입자금으로 주로 가계생활자금 목적으로 대출된 것이다. 하나은행도 올해 1분기 신규 주택담보대출 1조3000억 원 중 주택구입 용도 비중은 25%(3250억 원)에 그쳤고 나머지 75%(9750억 원)는 가계생활자금으로 사용됐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모두 주택 비구입자금 용도로 대출해준 비중이 작년 1분기에 비해 각각 11.3%포인트, 16%포인트 늘었다.

국민은행 개인여신부 고광래 팀장은 “집값이 오르고 부동산시장이 활발할 때는 주택구입 비중이 높지만 경기가 침체돼 있을 땐 가계에서 생활자금이나 사업 운용자금으로 쓰려고 기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비중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가계대출 부실 비율 3월말 0.68%로 급등

대부분은 생활자금으로 쓰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지만 일부에서는 최근 증시 상승 분위기에 휩쓸려 주식 투자를 하려고 은행돈을 빌리기도 한다. 회사원 서모 씨(37·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금리 하락으로 이자 부담이 줄었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가격이 많이 떨어진 우량주에 투자해볼까 생각 중”이라며 “직접 투자로 펀드 손실을 만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계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와 주식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대출 부실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상태인 주택담보대출이 소득증가 없이 더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건전하지 않은 유동성의 확대는 경기 회복 기대감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계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9월 말 0.53%에서 12월 말 0.54%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올해 3월 말엔 0.68%로 급등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채권 비율이 3개월 사이에 0.09%포인트 상승한 것이 주 원인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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