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후유증 기업 - 증권 전방위 확산

  • 입력 2008년 9월 10일 03시 07분


유진그룹 “증권사 매각 검토”… 금호-두산 유동성 ‘홍역’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금순환 안돼… 계열사 주가 급락

기업 인수합병(M&A)의 후유증이 증권업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을 인수한 유진그룹은 9일 유진투자증권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진그룹은 이날 “경쟁력 있는 사업 분야에 집중한다는 전략 아래 (유진투자증권 매각을) 검토는 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시장에 퍼져 있는 증권사 매각 검토설을 인정했다.

이날 증권업계에서는 유진그룹의 자금 사정 악화가 증권사 매각 검토의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M&A로 덩치를 키운 기업들의 유동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 유동성 악화 우려 커져

유진그룹의 증권사 매각 검토는 지금까지 유진그룹이 보인 행보와는 다른 것이다. 유진그룹은 올해 초 서울증권 사명을 유진투자증권으로 바꾸면서 “M&A를 통한 대형화도 적극 모색한다”며 증권업계에서 사세(社勢)를 키우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기 때문이다.

유진그룹의 증권사 매각 검토는 일차적으로 유진투자증권의 대형화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을 들여 추진했던 교보증권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체 능력으로 대형 증권사로 성장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증권업계에서는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대형 증권사들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중소 증권사들은 인력 유출과 이익 감소로 독자생존 기반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35개 증권사의 올해 4∼6월 순이익은 529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616억 원)보다 50.1%나 급감했다.

근본적으로는 유진그룹이 건실하지 않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증권사 매각을 검토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진그룹은 올해 초 하이마트를 2조 원에 인수하면서 재계 30위권으로 기업 규모가 커졌지만 금융권에서 1조1000억 원을 끌어다 썼다. 그 결과 유진기업 등 일부 계열사의 재무 부담이 급증하자 5월에 3000억 원 상당의 자산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 금융시장 안정 여부가 변수

기업들이 M&A 후유증을 극심하게 겪고 있는 것은 M&A를 하면서 거액의 빚을 내 기업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시한 ‘풋백옵션’으로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휘말렸다. 풋백옵션은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대우건설 주가가 내년 12월까지 3만2000원대를 밑돌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 주겠다는 약속으로, 현재 1만2000원 정도인 대우건설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금호 측이 4조 원가량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금호그룹은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지난달 유동성 자금 4조574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두산그룹도 지난해 미국에서 건설장비업체 ‘밥캣’을 49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29억 달러는 외부에서 빌렸다. 여기에다 밥캣의 실적 부진으로 10억 달러를 추가 출자키로 하면서 계열사 주가가 급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금리가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는 점도 M&A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대신증권 구희진 리서치센터장은 “2000년대 중반에는 세계 경기 호황으로 기업들이 자체 잉여자금과 외부 차입으로 쉽게 몸집을 불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고금리와 자금시장 경색으로 빚을 내서 규모를 키운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며 “M&A 기업들의 미래는 상당 부분 금융시장의 안정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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