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돈, 적금으로 몰린다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12분


주식-펀드-부동산 수익 떨어져… 5개월 연속 수신 증가

《입사 10개월차인 회사원 유모(26) 씨는 목돈 마련을 위해 5월부터 3년 만기 정기적금에 들었다. 지난해 말 첫 월급을 받자마자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던 동료들이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며 울상을 짓자 적금 쪽으로 눈을 돌린 것. 유 씨는 “종자돈을 마련하려면 무엇보다 수익률은 다소 낮아도 안정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나머지는 기회를 봐 펀드나 보험 등에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적립식 펀드 투자 등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은행의 정기적금이 최근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다른 투자 상품들이 원금까지 까먹는 상황이 되자 전통적인 ‘목돈 만들기’ 투자 상품인 은행 적금에 고객들이 다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 은행 정기적금 증가세로 전환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예금은행의 정기적금 수신액은 13조8034억 원으로 5월보다 2.3% 늘었다. 정기적금 수신액은 2006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5개월 연속 전달보다 줄다가 2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뒤 5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의 적금 잔액도 올해 들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11월부터 판매하고 있는 ‘가족사랑 자유적금’의 가입 계좌 수는 현재 63만 개가 넘는다. 상품이 나오고 7개월 만인 올해 6월 저축금액 1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8월 현재 1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하나은행이 5월에 내놓은 ‘와인처럼적금’ 가입 계좌 수는 현재 6만5000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많을 때는 하루 가입 계좌 수가 2000개에 이르러 직원들도 놀랐다”며 “이전보다 증가세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 적금의 귀환은 ‘풍선효과’

최근 적금의 증가는 주식 및 펀드 수익률 하락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일종의 ‘풍선효과’로 풀이된다.

국내 및 해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인 데 비해 정기적금의 최고금리는 6%대다. 3년 만기 최고금리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가족사랑 자유적금은 6.15%, 신한은행의 희망에너지 정기적금은 6.30%다.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지점 PB팀장은 “올해 들어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경험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적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영업점에서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펀드 상품을 권했지만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적금 등 안정적인 상품을 주로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적금의 교훈, 분산 투자가 대안

은행의 적금 잔액 및 가입 계좌 수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적립식 펀드의 인기에 밀린 정기적금이 예전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동옥 하나은행 상품개발부 과장은 “주식 시장이 다시 살아나면 아무래도 적금보다는 펀드에 투자하는 고객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정기적금이 자금 조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수익 측면에서도 펀드 등 금융상품보다 유리하지 않아 시큰둥한 반응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적금 잔액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은행 원화예수금 가운데 2%가 채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자금 조달에서 적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8% 수준이다.

하지만 재테크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적금은 훌륭한 분산 투자 대상이 된다고 조언했다. 우리은행 정 팀장은 “펀드의 투자 리스크를 고려할 때 적립액 중 절반은 적립식 펀드에 넣고, 나머지는 비과세 혜택이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나머지 돈은 자유정기적금 등으로 분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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