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새로운 10년’에 달렸다]<2>공공부문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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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지 못할 바위가 어디 있으랴. 넘지 못할 산이 어디 있으랴. 새해에도 대내외 경제 환경은 여전히 어렵지만 정계와 재계,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한 산악인이 새해 첫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에서 바위를 오르고 있다. 캐논 EOS-MarkⅢ, 70-200mm 렌즈, ISO200, 1/60, f11 이훈구  기자
한국경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지 못할 바위가 어디 있으랴. 넘지 못할 산이 어디 있으랴. 새해에도 대내외 경제 환경은 여전히 어렵지만 정계와 재계,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한 산악인이 새해 첫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에서 바위를 오르고 있다. 캐논 EOS-MarkⅢ, 70-200mm 렌즈, ISO200, 1/60, f11 이훈구 기자
‘규제 공화국’에서 ‘기업 프렌들리 대한민국’으로

《경기 부천시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외국인투자기업 P사는 몇 년 전 한국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8000만 달러(약 744억 원)를 들여 반도체 생산라인 1개동(棟)을 증설하려고 했지만 한국의 관련 규제 때문에 공장 증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천시는 과밀억제권역(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지정돼 있어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P사는 결국 차선책으로 중국 공장의 생산설비를 늘린 채 한국의 규제가 풀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자주 ‘규제 공화국’으로 불려 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 사이에서도 이런 지적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물망처럼 얽힌 규제들이 기업을 옭아매고 발목을 잡고 있다. 시장에 개입하고 규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의 덩치가 커지면서 규제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회복하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규제의 사슬을 끊고 시장(市場)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 및 기업친화 방침을 분명히 하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한국이 ‘규제 공화국’의 오명(汚名)을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꼽힌다.

○ 그물망 규제 풀어야 기업이 산다

제약업체들은 ‘의약품 국제기준 품질공유화 제도(CGMP)’ 도입에 따라 2009년부터 항암제와 기타 일반 의약품의 생산시설을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CGMP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항암제 등의 해외 수출은 물론 국내 생산마저 불가능하도록 기준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 위치한 제약업체 T, J사 등은 지난해 말 지자체에 공장 증설을 요청했다. 하지만 자연보전권역 내 대기업들은 1000m²(302평) 이상의 공장 신증설을 금지한다는 규제 때문에 아직도 승인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기업이 볼 때 ‘규제의 덫’은 도처에 널려 있다.

수도권 규제만 해도 수도권은 과밀억제권역과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규제를 받고 있는 데다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개별법에 따라 도입된 규제가 중첩돼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현재 토지와 관련된 규제만 해도 120여 개에 이르며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데 무려 70여 개의 법령을 동시에 적용받는다.

해외로 나가는 골프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서비스수지 적자의 한 요인이 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골프장을 지으려면 인허가 과정을 밟는 데만 2년 넘게 걸린다.

경쟁국들은 경쟁적으로 규제를 혁파해 친시장적 사업 환경을 조성하고 있지만 한국은 오히려 뒷걸음질쳐 왔다.

세계은행이 17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기업환경지수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2005년 23위에서 2006년 26위로 내려앉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30위로 더 떨어졌다. 특히 기업투자와 직결되는 창업자유지수는 멕시코(75위) 러시아(50위)보다 한참 떨어지는 110위에 그쳤다.

이병욱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제품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어 기업이 투자 시기를 놓칠 경우 생존 가능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며 “글로벌 추세에 맞춰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시급하게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가 작아져야 시장이 큰다

한국의 규제 환경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공공부문의 비대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민간 주도 경제구조에서는 민간부문의 활력이 높아지지만 관 주도 경제에서는 규제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범을 전후해 ‘규제 개혁’을 외쳤던 노무현 정부가 집권 5년 동안 정부의 몸집을 불리면서 규제 수준은 오히려 나빠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앙부처 공무원 수가 2002년 말 56만2373명에서 2006년 말 59만169명으로 늘어나면서 정부 규제건수는 같은 기간 7723건에서 8083건으로 늘었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영학) 교수는 “규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관이 민보다 더 낫다’는 관료의 우월의식에서 비롯된다”며 “정부와 기업이 대등한 관계 속에서 역할을 재조정하고 공무원도 서비스기관의 비즈니스맨처럼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규제량 줄이고 규제질 선진화해야

어떤 나라도 규제를 모두 없애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시장이 있고 경쟁이 있는 한 룰을 만들고 감시 감독하는 업무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규제도 우선순위를 정해 풀어줄 것은 확실히 풀어주고 놔둘 것은 놔두는 등 규제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필요한 부분은 키우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줄이는 효율성 위주의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은 “규제의 존폐 여부를 종합적으로 따져 모든 경제주체를 일단 범법자로 의심하는 사전적 규제나 정책 당국자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규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를 우선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의 양을 줄이는 것과 함께 글로벌 수준에 맞게 질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규제를 양적으로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와 함께 시장을 감시하기 위한 규제의 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비즈니스맨 공무원들’

경기 안성시에는 여느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안성맞춤 마케팅실’이라는 부서가 있다.

이 부서 소속 공무원 20여 명은 안성시의 농축산물 브랜드 ‘안성맞춤’을 마케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발전을 위한 전략을 세우며, 외자유치 업무까지 담당한다.

김병준 마케팅담당관은 “특산물부터 문화 역사 자연자원 등 안성의 모든 ‘콘텐츠’를 상품화해서 어떻게 팔 것인지 연구하고 마케팅한다”며 “지자체도 일반기업처럼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규제의 그늘에서 안주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지만 기업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비즈니스맨 공무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관료적 행정 마인드를 벗어던지고 직접 발로 뛰기 시작한 것.

기업 마인드를 갖춘 공무원들의 지원은 지역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성시가 1998년 지역 농민과 함께 개발한 브랜드 한우 ‘안성맞춤’의 올해 매출은 150억 원으로 지난해의 2배로 늘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취임 첫해인 2006년 ‘대외통상교류관’을 만들어 일본 베트남 등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20여 차례 투자유치설명회를 열었다. KOTRA 밀라노무역관장을 지낸 성기룡 씨를 본부장으로 영입해 ‘투자통상본부’도 세웠다.

일본에서 한 기업 대표가 부산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진과 피켓만 들고 공항으로 달려 나간 일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김 지사는 ‘경북주식회사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경북도는 지난해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엑손모빌 등을 포함해 4조23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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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제공=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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