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업, 다리를 놓아 드립니다”

  • 입력 2007년 11월 2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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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가업 승계 고민 우량 中企 컨설팅 나서

《인천 남동공단의 송풍기 제조업체인 금성풍력 정동기(64) 사장. 전북 임실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온갖 고생 끝에 1970년대 서울 청계천상가에 소규모 공구가게 겸 공장을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참아가며 매출액 100억 원의 사업체로 키운 세월이 30여 년. 부동산으로 편하게 살라는 유혹도 숱하게 받았지만 우직하게 버는 대로 공장 설비에 투자했다. 최근 기력이 약해진 걸 느낀 그는 상속 및 증여 방법을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몇 년 새 공장 용지의 땅값이 크게 올라 만약 자신이 갑자기 세상을 뜨면 회사 총자산의 26%인 22억 원을 상속세로 내야 했다. 보유 현금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으로선 회사를 팔아야 세금을 감당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선 100년 넘게 가업(家業)을 잇는 견실한 중소기업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정 사장의 하소연이다.

○ ‘영속 기업으로 가는 길’ 조언

낙심한 정 사장이 문을 두드린 곳은 기업은행 컨설팅센터였다.

은행 측은 2주 동안 자체 경영 컨설턴트를 보내 회사 현황을 파악한 뒤 ‘자녀에게 사전 및 분산 증여를 하고 퇴직연금 가입으로 손비(損費) 범위를 늘리라’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정 사장의 상속 관련 세금은 22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은행들은 이처럼 우량 중소기업 고객을 단골로 확보하기 위해 가업 승계 컨설팅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2월부터 중소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가업 승계 무료 컨설팅을 시작했다. ‘백년대계 컨설팅’이란 이 서비스는 신청이 밀려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내년부터 가업 승계 컨설팅에 나서기로 했다.

임동수 우리은행 기업컨설팅팀 부부장은 “그동안 창업주들은 홀로 의사결정을 해 왔기 때문에 가업 승계 문제도 터놓고 상의할 상대가 없었다”며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는 부(富)의 세습이 아니라 영속 기업으로 가는 길이란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세금 부담에 직면한 창업 세대

중소기업들의 가업 승계 고민은 창업 세대의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나이는 1993년 48.2세에서 2006년 51.3세로 높아졌다. 60세 이상 CEO의 비율도 10.6%에서 16.1%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세무와 법률 전문가 없이 오너 중심으로 기존 사업에만 몰두해 왔기 때문에 체계적인 상속 및 증여는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정부가 올 8월 가업 상속공제의 한도를 최대 30억 원(가업 상속재산의 2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정부 주도로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일본 독일 등에 비해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의 가업 승계 컨설팅은 고객 이탈을 막고 부실 대출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중소기업 창업주들은 절세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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