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 빗나간 투자, 민간부문 엉뚱한 피해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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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공사 교보생명 증자 지분 ‘단타매매’ 경영전략 차질 빚어

한국투자공사 수익률 낮은 日 채권 등에 투자… 올해도 적자 예상

국민연금공단 퇴직 직원 금융사 재취업 기금운용 전략 유출 우려

교보생명은 9월에 유상증자를 실시한 데 이어 연말경 추가 증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기존 주주인 정부가 증자에 참여해 얻게 될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증자 지분을 시장에 내다팔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

최근 정부 산하기관이 증자로 받은 지분을 파는 바람에 경영전략에 차질을 빚은 전례가 있어 더욱 고민이다.

이처럼 정부 산하기관의 근시안적인 투자 행태가 민간 부문에 큰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기 차익을 챙기기 위해 민간 기업의 지분을 협의 없이 매각하는가 하면 성과급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퇴직자들이 금융회사 임원으로 재취업하는 등 정부 산하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교보생명은 9월 11일 유상증자를 실시해 기존 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에 22만 주를 주당 18만5000원에 배정했다. 자산관리공사 측은 이 지분을 국내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에 팔기로 하고 인수대금을 내기 전에 입찰을 부쳤다.

입찰 결과 24만 원 정도를 써낸 A증권사가 이 지분을 차지하게 됐다. 자산관리공사로선 가만히 앉아서 1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올린 셈이다.

문제는 A증권사가 교보생명 경영에 관심이 있는 외국계 B투자은행에 지분을 재매각하면서 불거졌다.

B투자은행은 2003년에도 교보생명 주식을 사려 했지만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았던 데다 교보생명 주식 매각 자문 과정에 참여한 전력이 있어 인수자로 적합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B투자은행은 교보생명 주식을 인수하지 못했고 교보 측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은 B투자은행의 인수 지분이 1% 정도에 불과하지만 향후 정부 측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며 압박을 가해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운용해 수익을 내라는 취지로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는 지난해 51억 원 적자에 이어 올해도 69억 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추정된다. 수익률이 낮은 일본 채권에 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등 투자 성적표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KIC는 지난해 임직원에게 총 5억5000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국정감사 결과 밝혀졌다. 1인당 성과급이 1142만 원으로 산업은행(577만 원)과 기업은행(611만 원)의 약 2배 수준이다.

또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직원들이 퇴직 후 금융회사에 재취업하거나 회식비를 펀드설립비로 처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2년 1월∼2007년 9월의 퇴직자 43명 중 31명이 민간 증권사나 자산운용회사에 취업했다. 공단의 기금운용 전략과 자산배분 현황이 유출되면 국민연금의 수익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정부나 공기업의 투자는 수익성만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 결과가 민간 부문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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