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시장 빗장 풀고 차-섬유 활로 뚫어

  • 입력 2007년 4월 2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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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통상장관급 회담의 발목을 마지막까지 잡았던 4대 핵심 쟁점은 쇠고기를 포함한 농업, 자동차, 섬유, 금융이었다.

농업과 금융에서는 미국이, 섬유에서는 한국이 공세를 이어갔고 자동차 분야는 한미 양국 모두 관세 폐지와 자동차 세제(稅制) 개편을 놓고 팽팽한 공방을 벌였다.

협상결과는 양측 모두 100%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나름대로 일정 부분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는 평가다. 쟁점별 협상안을 살펴본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전망

미국이 시장개방을 요구하면 한국이 FTA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못 박은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쇠고기 위생검역 기준 완화는 미국이 당초 문서로 약속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구두(口頭) 약속으로 대체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김 본부장은 "올해 5월 이후 과학적 기준에 따라 위생검역 기준 완화를 검토하는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5월 결정되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광우병 위험등급 판정에서 '광우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국가'에 해당하는 2등급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은 또 현행 40%인 미국산 쇠고기 관세를 협정 발효 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수입이 급증하면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크게 늘어 현재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호주나 뉴질랜드산을 점진적으로 대체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양국은 나머지 민감 농산물을 둘러싼 관세 양허안(개방안)에도 합의했다.

제주 감귤농가 피해 문제 때문에 마지막까지 공방을 거듭했던 오렌지는 국내산 유통기간인 매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현행 관세 50%를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시기에는 계절관세 30%를 7년간 적용한 뒤 폐지하기로 했다. 또 수확기에 연간 2500t의 무관세 쿼터(수입할당물량)를 미국에 주기로 했다.

식용 감자, 식용 대두, 꿀, 탈지분유, 전지분유 등 5개 품목은 미국에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만 부여하고 현행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또 사과와 배는 20년,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10년 등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관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3000cc 미만 미국 승용차 관세 즉시 폐지

자동차 분야는 미국이 관세(2.5%)를 일부 양보하는 대신 한국이 자동차 세제를 일정부분 양보하는 선에서 접점을 찾았다.

미국은 3000cc 미만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를 협정 발효 후 즉시 폐지하기로 했다. 3000cc 이상 승용차는 3년, 타이어는 5년, 픽업트럭은 10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한국이 당초 승용차 관세를 즉시 폐지하라고 미국 측에 요구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현재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승용차와 일본산 승용차의 가격차가 3%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상당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한국은 대신 배기량 2000cc 이상은 10%로 돼있는 현행 자동차 특별소비세를 3년 내에 5%까지 낮추기로 했다. 또 현행 5단계인 자동차 보유세를 대형·중형·소형 등 3단계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양국간 오랜 통상현안을 해결하고 국내 소비자의 자동차 세 부담을 덜어 자동차 내수(內需)를 진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으나 대형차 위주인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시장 공략은 보다 수월해질 전망이다.

●미국 수입액 기준 61%의 섬유 관세 폐지

농산물 분야에서 한국이 양보했다면 섬유 분야에서는 미국이 일부 양보했다.

미국은 수입액 기준으로 61%에 대한 관세를 즉시 폐지하고 린넨, 여성재킷, 남성셔츠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에 대해서는 원사(原絲)로 생산지를 판정하는 '얀 포워드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30%대 고(高)관세로 수출돼 온 스웨터 등 화학섬유 의류는 4%~8%대 관세율을 적용받아온 원사나 면사 등에 비해 보다 큰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은 중국 등을 통한 우회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수출업체의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원사를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들여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얀 포워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하는 제품의 수출증대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

●외환위기 때 일시적 자금이탈 통제

한국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개방해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보였던 금융서비스 분야는 예상과 달리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었다.

한국은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외화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안전장치인 '일시적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이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막판 협상에서 결국 한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한국은 이에 따라 경제위기 때 해외 투기성 자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데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게 됐다.

한국은 또 미국 금융회사가 한국에 영업점을 두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보험 등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경 간 거래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미국에는 있지만 국내에는 없는 신(新)금융상품도 건별로 금융 감독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서민이나 농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산업은행, 기업은행, 주택금융공사, 농협, 수협 등 국책 금융기관들은 협정문 적용의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씨티은행 등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금융회사가 미국 등에서 영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신용평가업은 국경 간 거래를 허용하지 않되 미국 신용평가사가 국내에 지점이나 현지 법인을 설립해 진출할 때는 허가 조건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또 우체국보험 및 일부 공제기관은 특수성을 인정하되, 금융 감독을 강화해 잠재적 부실 가능성을 축소키로 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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