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창립 60주년…매출 3억원→80조원 거대기업 우뚝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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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화장품 판매업체 조선흥업사의 구인회 사장은 경남 진주에 있던 포목점 ‘구인회 상점’을 매각했다. 각지에 사두었던 토지도 모두 처분했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화장품 원료인 글리세린을 사들였다. 직접 화장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부산 서대신동 자택을 화장품 공장으로 개조해 그해 첫 제품 ‘럭키크림’ 생산에 성공한다. 럭키크림이 예상 외로 큰 인기를 얻자 구인회 사장은 허준구(전 LG건설 명예회장) 씨와 함께 1947년 1월 5일 락희화학공업사를 창립해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본금 300만 원, 직원 20명의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로 출발한 LG그룹이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1947년 화장품으로 3억 원의 매출을 올린 신생 기업 락희화학은 화학공업, 가전제품, 무역, 금융, 통신 서비스, 액정표시장치(LCD), 휴대전화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60년 만에 계열사 31개, 직원 14만여 명, 매출 80조 원대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 ‘럭키치약’에서 ‘초콜릿폰’까지… 국내 첫 대졸공채 실시

LG는 생활용품과 가전제품을 축으로 사세(社勢)를 확장했다.

1953년 칫솔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1958년에는 럭키치약으로 미국산 콜게이트를 제치고 국내 치약 시장 1위로 올라선다.

1958년 설립한 금성사(현 LG전자)는 라디오(1959년), 선풍기(1960년), 냉장고(1965년), 흑백텔레비전(1966년) 등 ‘국내 최초’ 제품을 잇달아 개발하면서 전자산업을 주도했다. 특히 흑백텔레비전은 쇄도하는 구입 신청 때문에 공개 추첨 방식으로 판매할 정도였다.

LG는 1995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1999년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용 편광판에 이어 2000년대 들어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 타임머신TV 등의 ‘명품’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는 제품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경영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1957년 비공식 특채의 관례를 깨고 국내 기업 최초로 ‘대졸사원 공채’를 실시한 기업이 락희화학이었다. 또 이 회사는 1969년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기업 공개를 단행함으로써 1970년 2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LG는 2003년 한국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 관계를 정리하는 등 지배 구조도 정비했다.

○ ‘구-허 동업 경영체제’ 분리… 세계화 전략 펼쳐 글로벌 기업으로

1995년 구본무 회장 취임 이후 LG는 이동통신과 TFT-LCD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중국과 유럽, 미주 지역에 생산 법인을 확충하는 등 공격적인 세계화 전략을 펼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구 회장은 2003년과 2005년에 각각 LG그룹과 LS그룹, GS그룹의 계열 분리를 단행함으로써 창업 이래 57년간 이어졌던 구 씨와 허 씨 양가의 동업경영체제를 순조롭게 마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알짜 기업’이었던 GS건설과 GS칼텍스, LS전선 등을 넘겨주면서 그룹 수익원이 외부 환경에 민감한 전자, 화학 쪽에 편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와 LG화학, LG필립스LCD 등이 동반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새해 들어서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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