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행복찾기]GS칼텍스 “원칙은 지킨다”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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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생산본부장 허진수 사장(왼쪽)과 박주암 노조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노사상생을 상징하는 ‘합수식’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GS칼텍스정유
GS칼텍스 생산본부장 허진수 사장(왼쪽)과 박주암 노조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노사상생을 상징하는 ‘합수식’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GS칼텍스정유
GS칼텍스 MF(정제공정)팀의 정성균(42) 계장은 입사 18년째인 고참 현장근로자다. 다시 기억하기도 끔찍한 2004년 7월 파업 때 그는 노조 조직부장으로 동분서주했다.

파업이 끝난 후 정 계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올해 1월 컨버터(반응 및 재생공정)팀에서 자리를 옮겼다. 이후 4개월 동안 4조 3교대 일을 마치고도 곧장 퇴근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남아 업무를 익혔다. 옛날 같으면 동료들이 “회사에 잘 보이려고 저런다”며 수군댔겠지만 요즘은 다른 노조원들도 다 그렇게 한다.

GS칼텍스 노조는 불과 2년 5개월 전 ‘주 40시간 근무 쟁취’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정유업계에서는 세계 처음으로 공장 가동을 보름간 중단시켰다. 파업 중 회장 모양의 인형 목을 베는 퍼포먼스를 벌여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여천산업단지 최강 노조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 계장의 변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변한 것은 정 계장만이 아니다. 회사도 달라졌고 노조는 통째로 변했다.

변화의 키워드는 ‘원칙’이란 단어였다.

오후 3시 20분 여수공장 안전동 앞 광장. 오후 3시까지 아침 조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을 퇴근시킬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2004년 파업 이전에는 이 버스가 3시 정각에 공장을 떠났다. 2시 30분쯤 되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파장 분위기였다. 회사도 노조도 이런 것쯤은 ‘관행’으로 여겼다.

“노조가 승진 연한도 정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방치했고요. 그렇다 보니 노조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직무상 상급자보다 노조에 먼저 달려갔죠. 퇴근시간 같은 사소한 데서부터 원칙이 무너지면 전체 질서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김성진 전무·인력개발부문장)

원칙을 무너뜨린 온정주의를 거둔 대신 회사는 2004년 파업 이후 분기마다 경영 현황을 노조 집행부에 자세히 설명한다. 현장 간부인 팀장, 부문장은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이상 수익률 등 경영실적을 알린다. 그렇다 보니 현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직원들보다 회사 사정을 더 먼저 아는 경우도 있다.

2004년 파업 이후 노와 사는 비로소 ‘안’에서 복닥거리고 싸우느라 보지 못했던 ‘바깥’을 보게 됐다. 원유만 수출하던 중동 국가들이 정유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중국도 정유 시설을 늘리고 있다. 모두 GS칼텍스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잠재 요인이다.

GS칼텍스의 고졸 10년차 근로자면 초과수당 등을 합쳐 1년에 70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사택 등 복지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2004년 파업 때 650명이 징계를 받았고 일부는 3개월 정직, 감봉 등으로 월급을 못 받았습니다. 그때 조합원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직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달았어요.”(박주암 노조위원장)

2004년 파업 이후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스스로 파업 가결기준을 노조원 절반 이상 찬성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바꾸었다. 노조 조직체계에서 ‘쟁의부’는 아예 없애 버렸다.

여수=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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