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보호막’이 고용창출 ‘차단막’으로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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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달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하나씩 전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올해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인 월평균 35만 명 달성이 힘들 것 같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창출에 따른 신규 취업자가 월평균 30만 명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좋은 소식은 통계청 조사 결과 8월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사이에 2만6000명 줄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감소한 것은 2001년 관련 조사 이후 처음.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도 35.5%로 작년보다 1.1%포인트 줄었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비정규직 감소를 반겨야 할 정부 안에서는 묘한 기류가 돌고 있다. 비정규직 감소와 일자리 창출 목표 달성의 실패가 무관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 비정규직이 줄면 일자리도 따라 준다

통계청이 지난달 말 내놓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8월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의 산업에서 일자리 수(취업자 수)와 비정규직 수의 증감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해 8월에 비해 비정규직이 감소한 제조업, 도소매·음식숙박업, 농림어업에서 일제히 일자리도 감소한 것. 반면 비정규직이 늘어난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전기통신·운수창고·금융업에서는 일자리도 함께 늘어났다.

건설 부문만 유일하게 수치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동 건설경기의 회복으로 정규직 고용이 늘었지만 국내에서는 건설경기 침체에 따라 업체들이 비정규직을 줄였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연령대별, 학력별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또 본보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2001년 이후 비정규직 수와 전체 일자리 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둘 사이의 상관계수는 0.82로 매우 높았다.

2003∼2006년만 떼어 분석하면 비정규직 수와 일자리 수의 상관계수는 0.92로 더 높아졌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우면 관계가 깊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규직과 일자리 수의 상관계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0.22에 그쳤다.

○ 정부 “목표와 현실의 차이, 비정규직 때문”

정부도 이 같은 비정규직과 일자리 수의 ‘동조(同調) 현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면서 “특히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평균 7%대 수준인데 제조업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 것은 이 분야 비정규직의 감소와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본보 설문조사에 응답한 15개 대기업 중 40%인 6개 기업은 올해 신규 인력채용에서 정규직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9개 기업 가운데 7곳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뽑았다”고 답했으며 1곳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함께 줄였다”, 또 다른 1곳은 “비정규직은 같은 수준으로 뽑고, 정규직을 줄였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채용만 줄였다는 6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 중 절반인 3명은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통과되면 인력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2명은 “비정규직에 대한 부정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1명은 “경기가 나빠 비정규직부터 줄였다”고 답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은 기업이 2년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면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쉽게 해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문위원은 “비정규직을 선호하던 기업들이 비정규직 법안 통과를 앞두고 벌써부터 비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은 비정규직 채용을 더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일자리의 양과 질 조화 방법 찾아야

올해 8월 현재 비정규직의 인건비는 정규직의 62.8%. 정규직 1명을 고용할 돈이면 1.6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해고가 쉽다는 점 때문에 기업들이 부담이 적은 비정규직을 많이 늘려 왔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으로 인건비를 절감해 주주의 배당만 늘리는 바람에 한국 경제에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나 대우에 대한 과도한 차별은 해소해야 하겠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면 실업자나 취업 준비생들의 ‘고용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의 절반가량(51.5%)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한 사람들”이라며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더라도 고용의 유연성을 유지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일자리의 양과 질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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