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맨제도 ‘괴물 펀드’ 여의도 증권가 어슬렁

  • 입력 2006년 8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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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국세청이 외국계 펀드에 칼을 뽑아들었다. 주식투자로 수천 억 원을 번 외국계 펀드에도 정상적으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세무조사를 받은 외국계 펀드 가운데 하나가 칼라일 펀드다. 칼라일 펀드는 2000년 한미은행 주식 36.6%를 인수했다가 2004년 씨티은행에 팔아 6617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칼라일 펀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국내 세법에 명시된 조세제한특례법 조항의 적용을 받아 절묘하게 빠진 것. 만만찮은 투자 실력을 과시한 칼라일 펀드의 국적(國籍)은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이 아니다. 카리브 해(海)의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이자와 배당소득세, 법인세가 면제되는 지역)인 케이맨 제도(諸島) 소속 펀드로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최근 케이맨 제도 국적의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기업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의 투자가치를 높게 본 결과로 좋게 해석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누구이며, 왜 한국 기업에 눈독을 들이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 ‘케이맨 제도의 한국 공습’

최근까지 한국에서 관심을 끌었던 해외 조세회피지역은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 ‘라부안’이었다. 아시아 증시에 투자하는 수많은 금융기관이 이곳에 이름뿐인 본사, 즉 페이퍼컴퍼니를 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외국계 펀드의 탈세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특히 재정경제부가 올해 6월 라부안 소속 법인에도 세금을 원천징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지역의 매력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원은 “라부안에서 국내 증시에 투자한 자금은 2004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2조7000억 원가량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라부안의 공백을 메우며 작년부터 새롭게 부각된 지역이 바로 케이맨 제도다.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외국인투자가 가운데 국적이 케이맨 제도인 투자가는 모두 1171명(법인 포함)으로 미국(7287명)과 일본(1588명), 영국(1574명)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특히 케이맨 제도 소속 투자가는 2005년 217명, 올해 상반기(1∼6월)에만 174명이 늘어나 1년 반 새 391명이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반면 라부안이 포함된 말레이시아 소속 투자가는 1년 반 새 89명이 늘었을 뿐이다.

○ ‘정체를 모른다’

케이맨 제도의 ‘한국 상륙’은 올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올해 초 KT&G와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인 칼 아이칸 씨 측의 ‘아이칸 파트너스 마스터펀드 리미티드 파트너십’도 케이맨 제도에 적을 두고 있다.

최근 FnC코오롱(6.42%)과 크라운제과(5.98%)의 지분을 집중 매입한 산사캐피털, 더존디지털웨어(6.50%)와 건설화학(5.41%)의 주요 주주에 오른 코어베스트 뉴프런티어 파트너스도 케이맨 제도 소속이다.

한국 투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체와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아이칸 씨 측이 KT&G 주식을 오랫동안 사 모을 때에도 국내에서는 이들이 누구인지 거의 파악하지 못하다가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적절한 대비를 하지 않다가 낭패를 본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소버린자산운용이 2003년부터 SK㈜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입할 때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다가 자칫하면 SK그룹의 경영권이 넘어갈 뻔했다.

○ 관련 정보 파악 서둘러야

외국계 자본이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것을 못마땅해할 이유는 없다. 이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문제는 이들이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 외국계 자본의 공격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에만 신경 쓰고 투자를 소홀히 하는 폐단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 국내 기업의 주요 주주로 등록한 외국계 펀드만이라도 이들이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 △금융자본이라면 단순한 투자 펀드인지, 기업 경영권을 노리는 펀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다른 나라에서 어떤 투자행태를 보였는지를 알아야 대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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