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손’ 마우스를 잡다…게임 영화 유통업으로 변신 잰걸음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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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만 되면 누가 더 예쁜 공책을 들고 나타나는지가 늘 관심거리였어요. 그

래서 문방구에만 가면 여러 브랜드의 디자인을 살펴 고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죠.” 회사원 이혜진(28·여·서울 서초구 방배동) 씨의 이런 학창시절 추억도 이제는 다 옛이야기가 돼 버렸다. “요즘에야 일하면서 종이를 쓸 일이 거의 없죠. 어쩌다 필요하면 옆에 있는 동료한테 ‘수첩 아무거나 하나만 쭉 찢어 달라’고 합니다.”모나미, 바른손팬시, 모닝글로리…. 문구업체는 소비자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친밀하게 접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하지만 그 이름들은 시대가 지날수록 빠르게

잊혀져 가고 있다.》

아이들 졸업 선물은 앨범 대신 게임기나 MP3플레이어가 많아진 지 오래고 대학 강의실에서도 필기는 노트북컴퓨터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구업체들이 아직도 볼펜, 공책이나 만들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으로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감이 큰 만큼 변신의 몸부림도 눈에 띈다.

○ 영화, 게임, 유통업 등으로 ‘탈출’

바른손은 30여 년간 자사가 개발한 캐릭터를 활용해 노트나 카드 등을 만들어온 전통 문구업체. 그러나 최근 이 회사의 사업 영역은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사내(社內)에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를 출범시킨 바른손은 올해 3월 게임개발 유통업체의 지분을 인수해 게임산업에 본격 진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영화 제작에도 투자한다는 목표다.

회사 측은 “축적된 캐릭터 개발 역량과 게임 콘텐츠 산업 간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예쁜 팬시 문구제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 회사는 이제 ‘복합 문화 콘텐츠 기업’으로 목표를 전환했다.

모닝글로리는 고급화를 통한 해외 진출을 돌파구로 삼았다.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 중국 등 세계 30개국에 모닝글로리 ‘해외 플라자’를 열었다.

‘153 볼펜’으로 유명한 모나미는 종합 문구 유통업체로 변신했다. 이제는 볼펜 제조로 생기는 매출보다는 문구나 컴퓨터 소모품 유통업에 의한 매출이 더 크다. 최근에는 한국HP와 손잡고 프린트 시장에까지 뛰어들었다.

○ “전통 문구업으로는 안 된다”

전국 문구업체는 1000여 개가 되지만 국내 문구시장 규모는 수년째 연간 3조∼4조 원 수준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문구 산업이 정체된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와 e메일 등 대체 수단의 발달.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불리는 저(低)출산 문제는 결정타였다. 문구 제품의 주 고객인 학생들의 수는 해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닝글로리 허상일 부사장은 “자녀가 둘 있을 때보다 하나 있을 때 부모는 조금 더 좋은 문구를 사주려고 한다”며 “고급 문구로 전환한다면 한정된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밀려오는 저가(低價) 상품에 맞서 고급화로 차별화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전략이다. 고가 다이어리와 수첩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굿모닝신한증권 김경섭 연구원은 “문구업체들의 사업 다각화 노력을 평가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이제 전통 문구 업종만으로 기업 가치를 대폭 향상시키기 힘들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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