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아이칸 ‘물밑 지분경쟁’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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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KT&G 본사.

3월 주주총회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스틸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가 칼 아이칸 측 사외이사로 입성한 뒤 두 번째로 이사회가 열렸다.

지난달 첫 이사회에서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지만 이날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정상 이사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는 서신만 이사회에 전달했다.

통역도, ‘적(敵)’과의 논쟁도 필요 없는 이날 이사회는 처음엔 ‘일사천리’로 끝날 듯했지만 회의는 오전 10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실무 간부들이 보고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황급히 불려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 자사주 처분하면 의결권 살아나

이사들은 담배 소송 진행상황, 노조와의 임금협상 문제 등 일반적인 경영 현안을 논의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중요한 의결사항이 있었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39만 주(전체 지분의 0.24%)를 장외에서 처분하기로 했다. 사내 복지기금에 넘긴다는 것이다.

KT&G 측은 “직원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기금 조성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사주는 회사가 갖고 있으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처분하면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에 KT&G의 우호지분은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아이칸 측에선 자사주 처분에 줄곧 반대해 왔다. 만약 리히텐슈타인이 이사회에 참석했다면 언쟁을 벌일 만한 사안이었다.

아이칸 측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아이칸 파트너스는 이날 KT&G 지분 0.32%를 추가로 사들였다고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KT&G 주식 51만여 주를 매집했다.

양측이 확보한 추가 지분은 1%에도 못 미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현재 KT&G와 아이칸 측이 확보한 우호지분은 각각 17.08%와 17.03%. 불과 0.05%밖에 차가 나지 않는 박빙이다.

○ ‘경영 간섭 대신 우호지분 높여라’

우호지분 늘리기 경쟁을 하는 것은 현재로선 양측 모두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KT&G 곽영균 사장은 “자사주를 ‘백기사’에 바로 매각하면 주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칸 측도 마찬가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KT&G 주식을 공개 매수하는 방법이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무엇보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국내 증권사들이 아이칸의 공개 매수 창구가 되기를 꺼린다.

대신증권 이정기 연구원은 “아이칸 측은 어떤 카드가 시장에서 먹힐지 고민 중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외이사를 통한 경영 간섭보다는 지분을 늘리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실리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분은 사외이사를 추가 선임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KT&G 주요 지분 현황 (단위: %)
KT&G 우호지분칼 아이칸 측 지분
지분 구성중소기업은행 5.96
우리사주조합 5.85
국민연금 3.17
사내 근로복지기금 2.10
자사주(의결권 없음) 9.50
프랭클린뮤추얼 9.37
칼 아이칸 연합 7.66
의결권 있는 지분 합계17.0817.03
자료: KT&G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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