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심화시키는 양극화 해소방안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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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감면 축소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8) 씨는 마이너스 통장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연말정산 때다.

각종 소득공제로 100만∼200만 원의 근로소득세를 돌려받는 것이 가계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 직장인들 사이에서 연말정산은 ‘막판 역전극’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부가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세 감면 폭 축소를 검토한다는 보도를 보고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세 감면 폭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대상이 근로자 소득공제이기 때문이다.

○봉급생활자 세 부담 늘 수밖에 없어

정부는 직장인 근로소득에 대한 각종 공제가 너무 많다고 보고 이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한 ‘2005년 조세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공제 항목 중 신용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로 인한 조세감면액이 9812억 원이고 보험료 공제(100만 원 한도)로 인한 감면액은 1조3492억 원이다. 이 밖에 교육비 공제 등을 포함해 근로소득자 소득공제 항목은 모두 11개. 이에 따른 세금 감면액은 7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조세감면 총액 19조9878억 원의 38%에 이른다.

조세 전문가들은 정부가 우선 감면 목표를 달성한 신용카드 공제액부터 줄일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한도를 늘린 교육비 공제와 보험료 공제도 다시 줄일 것으로 보인다.

봉급생활자들이 연말에 소득보전 효과를 누렸던 소득공제 한도가 줄면 세금이 늘어 결국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봉급생활자의 소득을 줄여 양극화 재원으로 활용하게 되는 셈이다.

○ 농어민과 중소기업 몫도 줄어든다

농어민과 직접 연관된 조세감면 조항은 농어업용 기자재 및 석유류 구입 시 해당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것이다.

현재 농민들은 경운기에 사용하는 기름을 시중 가격의 절반 정도에 살 수 있다. 이로 인해 농어민들이 누리는 혜택은 연간 약 3조 원. 이 조항이 만료되는 시기는 내년 6월 말로 재경부는 몇 년 전부터 이 조항의 폐지를 추진해 왔다.

농협 수협 축협의 예탁금에 대한 이자 비과세도 올해로 끝나 농어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지난해 이 상품의 비과세로 인한 감면액은 2104억 원.

중소기업 지원액도 축소가 불가피하다. 이미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액은 지난해 4912억 원으로 2004년의 9356억 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한국조세연구원 박기백(朴寄白) 연구위원은 “서민층 특히 농어민에게 지원하는 조세감면액을 줄이려면 그만큼을 해당 계층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해야 반발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딜레마에 빠진 정부

재경부는 160개 조세 감면조항 가운데 120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했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 2010년까지 4조9000억 원의 저출산 고령화대책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 또 상반기 중에 조세감면 폭을 더 줄여 양극화 해소 재원을 추가로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도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재경부 박남혁(朴南爀) 조세지출예산과장은 “국회에서 받아들여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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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세 신설

수도권에 있는 A무역회사는 올해 초 직원들에게 ‘예상 못한 세금을 내야 하니 최근 3년 간 지급한 비정기 상여금의 일부를 반납하라’는 e메일을 보냈다.

도시환경 정비를 위해 종업원 급여에 매기는 목적세인 ‘사업소세’는 정기 상여금뿐 아니라 비정기 상여금에도 부과되는데 이를 몰라 내지 않았다가 최근 적발된 것.

이 회사 이모(39) 경리과장은 “세금 안 낸 건 잘못이지만 무역회사 직원에게 도시정비 비용을 대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업소세뿐 아니라 교통세, 교육세 등 용도가 정해져 있는 목적세 규모는 전체 세수의 20%에 가깝다.

목적세는 조세 저항이 적어 세금 걷기는 쉽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곳에 세금을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국민 1인당 65만 원꼴

지난해 예산 기준 목적세 규모는 31조3347억 원으로 국세와 지방세를 합한 전체 세수의 19.7%. 국민 1인당 연간 65만 원가량을 목적세로 내는 셈이다.

중앙정부가 걷는 목적세는 교통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주세 등 4가지. 지방자치단체는 공동시설세, 지역개발세, 지방교육세, 도시계획세, 사업소세, 담배소비세 등 6가지 목적세를 걷는다. 주세와 담배소비세는 조세 체계상 간접세이지만 술과 담배 소비 억제를 위한 목적세로 분류된다.

소주세율을 현행 출고가의 72%에서 90%로 올리면 소주를 많이 마시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연간 3200억 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 소주 가격이 오른다고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도 별로 없는 만큼 술 소비 억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이런 목적세가 많아지면 정부가 필요에 따라 운용할 수 있는 세수는 줄어든다.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으므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돌릴 수도 없다.

이화여대 전주성(全周省·경제학) 교수는 “현 목적세와 지방교육에 고정적으로 투입되는 보통세까지 합하면 전체 세수의 35% 정도가 특정 용도에 할당돼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목적세를 내는 사람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주택 보유자가 내는 재산세에는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 지방교육세 등 3가지 목적세가 자동적으로 얹힌다.

○“세금 걷기 쉬워 목적세 계속 추진”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지난해 9월 저출산·사회안전망 관계 장관회의에서 “저출산 재원 마련은 어차피 목적세”라며 “상속세 등에 나눠 부과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논의 과정을 거쳐 현재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위한 목적세는 유보된 상태다.

하지만 “일단 보류했으나 올해 안에 반드시 그 카드(목적세 신설)를 쓸 것”이라는 관측이 정부 안팎에 팽배해 있다. 농어촌특별세를 소득세, 법인세, 관세, 특별소비세,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에 끼워 징수하는 것처럼 특정 목적세를 다른 세목에 부가하면 반발도 크게 준다.

아주대 현진권(玄鎭權·정책분석학) 교수는 “세입 확보가 쉽다는 관료주의적 편의성 때문에 목적세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며 “목적세를 보통세로 바꾼 뒤 국회 심의를 거쳐 재원을 배분하는 체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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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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