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에버랜드 1심 판결과 삼성의 길

  • 입력 2005년 10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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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어제 ‘삼성에버랜드 사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19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 때 실권주(失權株) 125만 주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 상무 등에게 배정한 에버랜드 경영진 2명의 배임 혐의를 인정했다. 이 상무에게 에버랜드 지배권을 넘길 목적으로 적정 시세보다 싼 값에 CB를 배정했다는 것이다.

에버랜드 주식은 삼성 경영권의 핵심이다. 이 상무는 CB를 주식으로 바꿔 그룹 내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에버랜드의 지분 25.1%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고 삼성전자 주식 등도 매입해 계열사들을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삼성 측은 그동안 “절세(節稅)를 위한 것이며 적법절차를 밟았다”고 해 왔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재계에 ‘편법 상속은 더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판결이 있은 직후 삼성 측은 “항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고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할 방침이어서 사건은 상급심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검찰은 또 “CB 발행 과정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증여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국내에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의 1등 기업집단이다. 고용, 기술, 수출, 이익 등 여러 면에서 그렇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이다. 이런 삼성이 증여 시비에 묶여 힘을 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삼성은 소송과 별도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겸허한 새 출발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지적과 ‘X파일’ 파동에서도 질적(質的) 도약을 위한 교훈을 찾기 바란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반(反)기업정서와 재벌 때리기를 증폭시키는 재료가 돼서는 안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건전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어야지, 기업 죽이기로 확대돼선 국민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후속 법률 판단을 지켜보되, 기업 활동의 위축을 심화시킬 ‘운동 차원’의 기업 공격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고 우리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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