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바닥…주가는 천장…왜?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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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종합주가지수가 10년 10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7일 장이 끝난 후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색종이를 날리며 기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브라보”
종합주가지수가 10년 10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7일 장이 끝난 후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색종이를 날리며 기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한국 증시에 새 지평이 열렸다. 종합주가지수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역사적 최고점을 10년 10개월 만에 넘어섰다.

종합주가지수 신기록 달성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오랫동안 증시의 발목을 잡아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가 외국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현상)’도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가 상승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국제적 위상도 한층 높아진다.

또 적립식 펀드를 중심으로 한 간접투자 열풍으로 국민의 자산구조도 바뀌고 있다. 증시가 한국 경제를, 그리고 국민 생활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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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증시, 고정관념을 깨다

과거 증시의 대세 상승은 경기 활황과 함께 찾아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데도 주가가 최고점을 돌파했다.

이런 증시 활황 뒤에는 ‘한국 증시의 재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한국 상장기업의 주가는 벌어들인 순이익 기준으로 미국 기업의 절반, 일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돼 있었다. 남북 분단, 불안한 정치 상황, 문어발식 경영 등 별의별 이유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됐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점차 해소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

수십 년 동안 증시를 지배했던 고정관념도 하나씩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증시에서는 장기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따라서 지수 500에서 사고 1,000에서 파는 것이 최고의 투자전략이며, 기업실적 분석보다는 투자 시점을 잘 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주가 최고점 돌파는 이런 생각들을 바꾸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증시는 미국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도 이제 잘 통하지 않는다.

한국투자증권 강성모(姜盛模) 투자분석부장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장기 강세장이 지금까지 익숙했던 증시에 대한 모든 통념을 바꿀 것”이라며 “재평가를 통한 증시 강세는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국민 자산구조가 바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각에서는 주식 투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꼽았다. 번 돈을 꼬박꼬박 예금하는 것은 성실함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주식 투자는 ‘한탕주의’와 같은 말로 인식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은 올해 완전히 깨졌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펀드 계좌는 7월 말 현재 700만 개를 넘어섰다. 한 집 걸러 한 집마다 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주식으로 저축하는’ 적립식 펀드 계좌도 300만 개를 넘어섰다.

연 4%가 채 안 되는 저금리는 국민의 노후 준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 놓았다.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돼 있던 자산이 조금씩 간접투자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2년 1분기(1∼3월) 62.41%였던 은행 예금 비중은 올해 1분기 57.70%로 4.71%포인트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에 간접투자 비중은 6.58%에서 7.30%로, 보험 및 연금 비중은 18.20%에서 20.69%로 각각 증가했다.

○ 변하고 있는 한국 경제

증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국민 자산구조에서 주식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주가가 오르면 국민소득도 증가하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올해 12월 퇴직연금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주가 상승에 따른 국민소득 증대와 함께 소비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金學均) 연구원은 “금융시장 활성화를 경제의 동력으로 삼았던 1990년대 미국식 신경제가 한국에서도 자리 잡을 가능성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증시가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면서 기업 경영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 21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이뤄진 유상증자는 1조2230억 원(272건)으로 지난해 전체 규모인 1조1817억 원(227건)을 넘어섰다.

증권선물거래소 옥치장(玉致章)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한국 금융시장이 만성적인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면서 기업 경영과 경제 시스템도 빠르게 선진국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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