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갚아라” “기다려라” 감정싸움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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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 2000만원을 지고 있는 자동차 영업사원 A씨(38)는 최근 회사 일을 제쳐두고 채권추심회사 직원 B씨(29)를 혼내주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B씨가 외근 중인 A씨의 사무실로 하루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 “○○신용정보 회사인데 A씨가 돌아오면 빚 좀 갚으란다고 전해 달라”며 A씨의 동료들에게 망신을 줬기 때문. A씨는 “수치심과 자존심을 자극해 빚을 받아내자는 수작”이라며 금융감독원 청와대 등 8곳에 B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용불량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채무자와 돈을 받아야 할 금융회사 직원들의 감정 대립이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채무자들은 갈수록 교묘해지는 빚 독촉에 감정이 극도로 상해 진정서 제출은 물론 주먹다짐까지 하는 경우가 많고, 금융회사 직원들도 채무자들의 ‘버티기’에 인격모독으로 맞서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금감원 김건민 분쟁조정실장은 “민원인들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정말 억울한 대우를 당한 경우에는 ‘함께 망하겠다’는 심리상태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장 심한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채권 추심 방법은 A씨의 사례처럼 반고의적으로 직장 동료들에게 빚을 진 사실을 알리는 것.

금감원 정성봉 검사역은 “휴대전화에 ‘4444’ 또는 ‘1818’ 등의 숫자를 남기거나 대문에 ‘법적인 절차를 시작한다’는 통지서를 붙이는 방법도 원성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반대의 사례도 많다. 한 카드회사 채권추심담당 직원 C씨(28·여)는 카드빚 1500만원을 연체 중인 채무자 D씨의 집을 찾아갔다가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E씨(33)는 최근 정부가 배드뱅크(신용회복지원은행) 설립 방침을 발표한 후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않자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회복되고 채무자들의 호주머니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금융기관과 채무자의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지난해 민원인들이 은행과 카드회사를 상대로 금감원에 제기한 민원은 모두 7만9805건으로 전년에 비해 31%나 늘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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