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속빈 강정'…수출늘어도 기술소유한 美-日만 이익

  • 입력 2004년 2월 11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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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한국의 정보기술(IT)산업은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과 미국이 챙겨가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의 IT산업이 1990년대 후반부터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부품의 국산화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IT산업과 반도체의 국산화율은 1995년 64.9%에서 2000년 55.4%로 낮아졌다.

이 때문에 IT산업은 자동차나 철강산업 등에 비해 고용효과나 협력업체의 발전 등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적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요 부품은 모두 외국산=한국의 휴대전화가 세계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휴대전화의 핵심부품은 대부분 일본과 미국 제품이다.

우선 휴대전화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칩의 경우 GSM방식은 유럽, CDMA방식은 미국 퀄컴사에서 전량 수입한다. 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카메라폰의 경우 이미지센서는 모두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한다. 디지털카메라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인 이미지센서도 모두 일본제. DVD의 핵심부품인 영상정보를 읽어내는 장치인 광 픽업도 모두 일본에서 수입한다.

디지털 가전제품에 쓰이는 비메모리칩도 대부분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2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나타냈다.

최근 삼성과 LG가 투자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와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역시 제조장비는 대부분 화낙 등 일본 기계업체에서 수입한다. PDP의 유리기판과 필름, 비메모리칩 역시 일본의 아사히글래스 등 대부분 일본산. LCD의 핵심부품인 정밀유리는 삼성코닝정밀유리가 전량 생산하고 있지만 기술은 미국 코닝사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원천기술과 창조적인 두뇌 부족=핵심부품의 해외의존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원천기술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삼성종합기술원 이창협 상무는 “한국 산업기술은 대부분 선진국이 이미 개발한 제품을 들여와 값싸게 생산하는 공정기술에 집중돼 있다”며 “이제는 원천기술 개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천기술이 강하려면 물리와 화학 등 기초과학이 강해야 하는데 이는 대학의 경쟁력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기업에 비해 높지 않은 것이 현실.

또 과거 방식을 뛰어넘는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가 부족한 것도 핵심기술의 해외의존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디지털카메라와 카메라폰, DVD처럼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신제품 개발과 새 통신방법의 개발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퀄컴사에서 보듯 디지털시대의 부는 창조적인 두뇌에서 창출된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개발의 역사가 짧아 대학과 기업이 축적하고 있는 기술기반이 약한 편이며 현재의 교육시스템도 창조적인 두뇌를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LG전자 관계자는 “한국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새로운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데 취약하다”며 “이는 붕어빵을 찍어내듯 평균적인 인재를 대량으로 길러내는 교육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LG는 해외의 우수인력을 스카우트하거나 외국대학에 핵심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맡기려 하지만 외국 정부와 기업의 견제로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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