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경제성장 가능할까]"4%대 이하땐 고통" 부양론 확산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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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올해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여러 변수를 점검하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각각 4.1%, 4.2%로 수정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5%대 전망치에서 크게 낮춘 것.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성장률을 5.0%로 수정 전망했다. 현 상황은 어떤가. 이라크전쟁 여파 등 외생적 변수와 신용카드사 부실, 회사채 시장 침체 등 내부 변수가 한국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정부도 재정 금융정책수단을 총동원해 꺼져가는 5% 성장의 불씨를 되살릴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인위적인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말했는데(2일·국회연설) 부양책을 쓰지 않을 경우 5%대 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택은 쉽지 않다. 3, 4%대의 낮은 성장은 매우 고통스럽다. 반면 인위적 부양을 통한 5% 성장은 고물가와 무역수지 적자라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기 경착륙(硬着陸)을 막기 위해 적자재정도 감수하겠다는 가능성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김 부총리는 3월 하순부터 여러 차례 “3년 정도의 중기 전망에 따라 재정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 “경기상황에 따라 연간 기준으로는 적자재정을 편성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 53%의 정부예산을 우선 집행할 뿐 아니라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는 견해로 해석된다. 저성장에 익숙한 선진국에서는 통상 성장률이 2.5% 이하로 떨어져야 경기침체라 하지만 한국경제로서는 4% 이하 저성장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확산되는 부양론=김 부총리의 시각은 정부 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박봉흠(朴奉欽) 기획예산처 장관도 “적자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는 당초의 발언을 바꿔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지면 적자재정을 편성할 수 있다” 고 견해를 수정했다.

조윤제(趙潤濟) 대통령경제보좌관도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수범위 내에서 재정을 집행하겠다는 기조가 아직 바뀌지는 않았지만 부총리 등 경제 주무팀이 경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김 부총리의 경기중시론은 이미 민주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활성화를 재계가 꾸준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야권을 포함한 국회의 동의를 받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적자재정마저 검토하게 된 데에는 이라크전쟁, 세계경기 침체, 북핵 문제 등 외생적 변수가 끼친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경제의 현 주소=이라크전, 미국과 세계경제 침체, 북핵 리스크 등 외생적 변수들은 유가와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국가신용등급, 환율, 은행의 해외조달금리, 외평채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친다. 최근 나타난 무역수지 3개월 연속적자도 유가 급등으로 인한 수입대금의 증가와 수출부진에 따른 것이다.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은 외생적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회사채 시장도 SK글로벌 사태로 촉발된 신용카드사 위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사 발행채권 외에 일반 회사채도 거래가 부진하다. 정부는 투신사 펀드 환매연기, 금융권 공동 카드채 만기연장, 심지어 5조원대의 브리지론을 조성해 신용카드사들의 유동성을 해소하는 봉합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300만명에 가까운 신용불량자로 대표되는 개인신용위기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금융시장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투신운용사 임원은 “2·4분기(4∼6월)까지는 대증(對症)요법을 통해 카드사의 유동성위기를 미룰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경제가 선(善)순환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회사채시장 마비가 일부 중견 그룹들의 유동성 위기로 옮아갈 가능성이다. H, D, 또 다른 D, 또 다른 H, A그룹 등의 회사채는 거래가 부진한 상태다. 이는 이들과 거래하고 있는 은행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부양책의 그림자=현재 한국경제는 외·내부적 암초에 부닥쳐 경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초 발표했던 5%대 성장률 전망을 유지하고 있는 기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김 부총리는 성장률을 낮출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적자재정을 편성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급감하는 국내수요를 적자재정을 통해서 늘리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으면 금리 인하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도 “시장 안정은 지켜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우 치솟는 물가와 소비 확대에 따른 국제수지 적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같은 부작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없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적자정책 활로찾기▼

경기활성화 대책은 크게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으로 구분된다.

현재로서는 재정정책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현재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일 만큼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태’여서 금리인하의 효과를 의문시하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올 들어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는 “외생적 변수의 해결이 불확실한 환경에서 통화완화책이 투자나 소비로 이어지기 어렵다. 금리인하라는 실탄을 아껴야 할 때”라는 입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들도 아직까지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때문에 인위적 경기부양이 결정되면 우선 동원될 수단은 적자재정일 수밖에 없다. 씨티그룹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한국의 재정건실도는 비(非)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적자재정 편성은 가계빚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계소비에 의존한 수요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고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의욕이 저하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내 수요를 늘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재정수단을 통해 세계 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기까지 시간을 버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전망했다.

적자재정이 편성된다면 1차적인 목표는 개인신용 위기→카드사 부실→SK글로벌 사태→카드채 및 회사채 거래 중단→지속적 경기침체 수순으로 확산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에 있다. 하지만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면 금리인하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한은 고위 당국자는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물가에 대한 걱정은 적다”고 지적했다. 앤디 시에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수석애널리스트는 “주변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은 앞으로도 2% 정도 금리인하를 단행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하할 경우 금리인하에 대한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와 권오규(權五奎)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은 최근 “물가가 5월경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가 내리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자재정과 금리인하를 통한 국내 수요 증가는 무역수지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폭 흑자가 예상되는 무역수지는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국내 수요가 증가할 경우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한은 박재환 정책기획국장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다시 흑자로 전환시키기는 매우 어렵다”고 우려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3월수출 호조…"희망이 보인다"▼

‘수출, 너만 믿는다.’

3월 한국의 수출입 실적은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도 월간 사상최대의 수출입 실적을 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수출 155억7000만달러, 수입 159억3000만달러의 실적이다. 통관기준으로 볼 때 무역수지는 올 들어 3개월 연속 적자를 냈지만 수출입 내용을 살펴보면 흑자전환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중국에 대해서는 무역수지 흑자가 커졌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경우 적자재정으로 가지 않더라도 4%선 성장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박재환 한국은행 정책기획국장은 말했다. 수출호조가 투자와 고용을 일으키고 부분적으로 국내소비 진작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이라크전쟁이 일찍 끝남에 따라 국제원유가가 안정돼 원유수입 부담이 큰 한국경제엔 청신호로 비치고 있다.

현재 수출입 구조로 볼 때 원유가 1달러 상승에 따른 수입증가액은 연간 12억달러로 추산된다. 30달러선에 형성된 유가가 25달러로 떨어지기만 해도 60억달러의 상품수지 개선효과가 나타난다. 상품별로는 컴퓨터 수출이 줄어들었지만 이것은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가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한 데 따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소득수지의 증가로 나타날 수 있다.

투자은행 UBS워버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최근 무역수지 불균형은 고유가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이것이 시정될 경우 8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가 예상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서영경 한은 국제무역팀 과장도 올 경상수지가 소폭 흑자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자산운용 수익을 중심으로 한 소득수지 등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서비스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2·4분기(4∼6월) 중 외국인 보유주식 배당이 실시됨에 따라 소득수지가 일시적으로 악화될 것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행 보유외환 운용수익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캐피털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은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이 60억∼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여 올해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견조한 수출세가 유지되면 한국경제가 물가 및 부동산 가격 앙등이라는 부작용 없이 4%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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