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기쁨도 잠시…신입사원들 ‘생존戰爭’

  • 입력 2003년 3월 2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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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경쟁 못지않은 생존경쟁.’

경쟁률 수백 대 1의 좁은 취업문을 뚫은 신입사원들이 입사 순간부터 또 다른 ‘내부 생존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근래 들어 대부분의 회사들이 능력과 업적에 따른 성과급과 연봉제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들은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은 기본이고 승진과 보직에 필요한 전문자격증을 따거나 업무능력을 높이기 위해 점심시간과 퇴근 이후, 심지어 휴일을 가리지 않고 ‘과외’에 뛰어들고 있다.

▽퇴근 후 도서관·학원 찾기=외국계 은행에 올 1월 입사한 김혜연씨(24·여)는 퇴근 후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학원으로 직행한다.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그는 “회사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힘들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오후 7시부터 4시간씩 강의를 듣고 매일 밤 12시가 다 돼서야 귀가하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굿모닝신한증권에 입사한 정재원씨(26)는 미국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따기 위해 100만원을 들여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다. 퇴근 후뿐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짬짬이 이를 듣고 있다.

정씨는 “3년차 선배가 CFA 자격증을 따자 원하는 부서에 배치됐다”며 “자격증이 객관적인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입사원용 온라인 재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석정씨(32)는 “지난해 4월 시작된 1기 강의에는 300여명이 참여했으나 지난해 말 2기 모집에는 600명으로 배가 늘었다”고 전했다.

▽주말도 근무의 연장=모 홈쇼핑 회사의 상품기획자(MD)로 올해 초 입사한 조모씨(26)는 일요일마다 백화점을 찾아가 인기 상품을 분석하고 있다. 휴일을 반납하고 ‘무급 연장근무’를 하며 상품 선정의 감을 익히고 있는 것.

H건설 신입사원 김희성씨(27)는 “입사 동기 대부분이 휴일을 제대로 못 쉬는 ‘건설 현장직’을 지망하고 있다”며 “이는 회사에 오래 남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근무하는 신입사원은 일요일에도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반까지 근무하는 날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유와 진단=국민은행 인사담당자는 “신입사원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학력자들이 증가한 반면 조직의 일자리 공급이 그만큼 늘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43)는 “고용불안이 심해지면서 회사원들은 비노동시간에도 자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됐다”며 “초과 과업을 요구하는 조직문화와 경쟁을 심화시키는 인사제도가 20대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을 낳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신자유주의가 팽배해진 데다 노동시장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신입사원들의 생존경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이남희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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