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의 ‘신용불량 탈출記’ …"새벽 우유배달…주말 막노동"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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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건 희망이 아니라 의지.’

지난 1년간 신용불량자 A씨(32·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끝없이 마음 속에 되뇐 말이다.

A씨가 신용불량자가 된 것은 지난해 3월. 그는 전문대 졸업 후 94년 인터넷 벤처기업에 프로그래머로 취직을 하면서 술값으로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술값 등으로 지출이 많았지만 겨우 연체없이 버텨오던 그는 지난해 1월 한 친구에게 목돈을 빌려준 데다 같은 달 아버지(67)가 위암 선고를 받아 수술비로 1000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했다.

‘돌려막기’로 빚을 갚기 위해 A씨의 카드는 순식간에 4개로 늘었고 각종 대출 금액이 2700여만원에 이르렀다. A씨는 결국 신용불량의 덫에 걸렸다.

결혼 얘기가 오가던 여자친구와도 ‘돈 문제’ 때문에 헤어졌고 집의 압류를 피하기 위해 혼자 고시원으로 옮겨 생활해야 했다. 자신을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과 수군거림은 견디기 힘든 고문과도 같았다.

월 120만원 정도인 프로그래머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빚을 갚을 방법이 없게 되자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새벽 3시반에 서울 용산의 아파트 6개 동에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오후 11시부터 PC방과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이 없는 주말에는 막노동판에 가서 돈을 벌었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이 한 달에 240만원 정도. 이 중 200만원으로 매달 대출 금액과 이자를 갚아 나갔다.

“대부분의 신용불량자들은 먼저 주변의 도움으로 빚을 갚습니다. 기댈 곳 없는 제 신세가 서럽기도 했지만 1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루에 20시간 일을 하는 생활이 9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지난해 11월경 A씨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위경련에 과로, 영양실조가 겹쳤던 탓이었다.

그러나 9개월간의 노력의 결과로 그는 2700만원 중 20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A씨는 5월이면 신용불량자 신세에서 벗어난다. 그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무계획한 지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신용불량자 수는 260만명에 이른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02년 10월 말 현재 이중 7.7%인 20여만명만이 ‘신용불량의 터널’에서 어렵게 빠져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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