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계좌 이용 시세조작 속수무책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7시 57분



17일 LG투자증권 계좌에서 미수 사고를 낸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대신증권 계좌에서도 주식 매입대금 22억원가량을 결제하지 않았으며 코스닥 종목을 대상으로 작전까지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신증권 홍콩법인 7개 계좌에서 이달 12∼13일 삼성전자 등 8개 종목 매입자금이 결제되지 않아 22억63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 계좌들의 소유자들은 1700억원대의 미수 사고가 발생한 LG투자증권 계좌 소유자들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올 8월 가야전자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막대한 차익을 거둔 혐의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작년 5월 개설된 이들 7개 계좌의 소유자들이 보유중인 다른 코스닥 종목들에 대해서도 시세조종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고를 외국 기관투자가들이 한국 증시의 감독상의 한계와 허점을 활용해 저지른 대담한 시세조작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감독당국이 외국인 계좌를 통한 이 같은 사기 거래에 대해 속수무책인 상황이어서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사기거래 수법〓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파생상품 거래와 연계된 대형 시세조작 사건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문제의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 주가가 상승세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11일 이전에 선물이나 옵션상품을 대량 매수했다. 그런데 지수가 예상을 빗나가자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매수해 종합주가지수를 끌어올린 뒤 선물이나 옵션상품에서 차익을 챙겼다.

삼성전자 대량 매수는 파생상품 거래에서 차익을 챙기기 위한 지렛대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수대금을 채워 넣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

▽외국 투자가 감독상의 문제점〓사고를 일으킨 외국 기관투자가들은 한국의 작전세력이 조세 회피 지역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일 것이라는 게 증권가 관측.

하지만 이 기관투자가들이 진짜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가릴 방도가 없다.

금감원 정은윤 주식시장팀장은 “외국에서 설립인가를 받은 회사라는 점을 입증하는 공인서류를 근거로 등록을 받아주기 때문에 진짜 국적은 알 수 없다”면서 “공인서류가 위조 또는 변조됐는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엄격한 신원 확인은 자칫 외국인 투자를 경색시킬 우려가 있다는 설명.

따라서 외국인의 사기거래나 외국인의 탈을 쓴 국내 작전세력의 농간을 막는 일은 전적으로 계좌를 관리하는 증권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고객 확보를 위해 자율규제는커녕 외국 투자가에게 증거금을 면제해주는 등 혜택을 베풀고 있다.

▽사건 파장〓한국 증시 대표주인 삼성전자 주식이 관련된 점이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오죽 만만해 보이면 초대형 우량주를 작전의 지렛대로 활용했겠느냐는 한탄이다. 이들은 국내 투자자들이 외국인 매매패턴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점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큰 손해를 입은 LG투자증권의 주가는 18일 4%가량 떨어져 주주들만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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