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채권 1만6000원 줘도 못사요”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7시 16분


“비실명 장기채권 좀 구해주세요. 물량만 있으면 가격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1998년 발행됐던 5년 만기 비실명 장기채권의 만기가 7∼12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를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 채권은 자금출처조사를 받지 않아 상속·증여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 발행물량이 3조8744억원으로 많지 않아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사는 A씨는 비실명 채권 30억∼35억원어치를 사려고 한다. 매수 희망단가는 액면 1만원짜리가 1만6000원. 만기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1만3700원을 받는 채권을 1만6000원에 사니까 수익률은 -17%.

이 채권을 사지 않고 1년짜리 통안증권을 사면 5%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회비용까지 합하면 손해는 22%에 이른다. 이렇게 큰 손실이 나는데도 비실명 장기채권은 매물이 없어 사기가 쉽지 않다.

자녀에게 주면 최고 40%에 이르는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돼 결과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에서도 제외돼 거액 자산가들의 수요가 늘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비실명 장기채권은 이자의 16.5%만 세금으로 내면 합법적으로 상속·증여할 수 있기 때문에 구하는 사람이 많다”며 “만기가 다가올수록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실명 장기채권은 98년 △고용안정채권 8744억원 △증권금융채권 2조원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1조원 등 3가지가 발행됐다. 이 중 고용안정채권과 중기구조조정채권은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청약을 받아 발행돼 매물이 거의 없는 상태. 증권금융채권은 8000억원어치가 투자신탁회사에 강제 배정됐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투신사들이 물량을 내놓아 약간씩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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