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비판 재계에 재갈물리나

  • 입력 2002년 7월 24일 23시 33분


공정거래위원회가 6대 대기업그룹 계열사에 대한 서면조사를 시작함에 따라 재계는 조사의 배경과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레임덕 현상’을 보이는 정권 말기에 제 목소리를 높여온 재계에 대한 정부의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비판 목소리 높여온 재계〓재계는 올 들어 공정위와 국세청 등 기업의 ‘감시기구’인 정부기관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격의 수위를 높여왔다.

공정위가 4월 말 “부당내부거래조사를 위해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미 초법적 권한을 누리는 공정위가 사법경찰권까지 확보해 기업의 부당내부거래를 단속하겠다는 것은 제도개혁 방향에 역행하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경련이 현재 준비 중인 ‘정부 행정위원회의 실태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는 “공정위는 법원이 아닌데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법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법원 기능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공정위로서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셈이다.

전경련은 또 이달 17일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경기 상황, 정치적 의도에 따라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국세청을 자극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대한 재계의 반대 입장도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22일 노사정위원회 최종협상 결렬에 전경련이 상당한 역할을 했기 때문.

이런 분위기 탓에 재계는 공정위가 임기 말 ‘재계 길들이기’를 위해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힘겨루기인가〓전경련 신종익(申鍾益) 상무는 “환율하락과 미국경제 회복 지연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갑자기 조사를 벌이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과거와 같은 ‘투망식’ 조사를 다시 벌이는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권이든 마지막 해가 되면 어김없이 재계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올해 재계의 공세는 어느 때보다 수위가 높았다”고 말했다. 잇단 공세에 자극받은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권 초기 외환위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결합재무제표 의무작성,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빅딜 등 정부가 제시한 구조조정 방안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 들어 한국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으며 재계는 일정 수준의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 자신감을 기반으로 재계가 정부에 대해 비판 강도를 높이자 정부는 부당내부거래 조사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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