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질서 새설계]'新팍스아메리카나' 가속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6시 59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새해에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지되겠지만 일방적 독주 기세는 꺾일 것이란 예측이다. 대신 권역별 ‘준 강대국’들이 일정한 지분을 갖고 세계질서의 작은 축들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초강국 미국이 그 지위를 유지하리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대체할 경쟁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

그러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켰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독주 행태는 적잖은 견제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미국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일방적 힘의 행사를 자제하는 신 팍스 아메리카나(Neo Pax Americana) 체제로 바뀔 전망이다. 즉 “미국식의 획일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다양한 제도의 공존과 경쟁이 필요하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는 ‘브레이크’가 어느 정도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 나름의 역할 공간을 확보하면서 준강대국으로 자리를 굳힐 전망이다. 유럽은 EU의 본격적인 출범으로 20세기 초 이후 미국에 완전히 빼앗겼던 세계질서 주도자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새해에는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EU의 세력 강화가 뚜렷해질 전망이다.

유럽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후 안정을 되찾은 러시아와의 연계를 강화해 상호 ‘윈-윈’ 효과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을 수용하게 되면 이 같은 구상은 점차 현실화될 것이다.

중국은 동북아권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그러나 당장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기는 힘들다. 당분간은 지역의 맹주로 저력을 비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다극화 움직임은 한편으론 국제질서의 균형추로 작용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안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라는 글로벌 리더십이 약화될 경우 국제문제를 조정할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간 충돌과 갈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한 표준문화도 거센 도전을 받을 전망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대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질 것이다. 테러 충격으로 인한 범세계적인 불안감 고조로 물질적 가치 추구에서 정신적 가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 심화될 전망이다.

이 같은 다양한 움직임들은 결국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논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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