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4년 경제위기 끝났나(下)]기업 체질개선 갈길 멀다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22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은 최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리면서 그 이유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가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려면 기업 개혁의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성과는 많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는 뜻.

정부는 지난 4년간 기업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한 덕택에 기업 부실이 줄고 대기업의 경영투명성이 개선됐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재계와 민간 전문가들은 기업 개혁의 성과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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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재정지출 늘려 성장률 겨우 유지
- <中>은행 돈 벌었지만 관치 심화
- <下>기업 체질개선 갈길 멀다

▽지표는 호전, 실체는 미흡〓외환위기 직후 정부가 설정한 기업 부문의 구조개혁 과제는 △부실기업 처리 △재무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제고 등 세가지. 이를 위해 부채비율 200% 의무화, 대규모 사업교환(빅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등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됐다.

일단 지표상으로는 호전됐다. 부작용을 무릅쓰고 부채비율 200%를 밀어붙인 결과 30대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97년 518.9%에서 지난해 171.2%로 떨어졌다. 98년 평균 31개였던 5대그룹의 업종 수가 올해 23개로 줄어 적어도 겉보기에는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런 실적에도 불구하고 기업 구조조정이 만족할 만큼 이뤄졌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를 뒤흔들 ‘잠재적 폭탄’인 대형 부실기업의 처리가 이런 저런 이유로 늦춰진 점을 가장 큰 한계로 꼽는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 수석연구원은 “수치만 놓고 보면 개선된 것이 분명하지만 실제 기업 체질까지 튼튼해졌는지는 의문”이라며 “회사채신속인수제 등 응급처방으로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바람에 금융부문이 다시 부실해질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빚을 갚아서 부채비율이 낮아졌다기보다 증시활황 때 앞다퉈 자본금을 늘렸기 때문인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산업경쟁력 강화로 활로 찾아야〓“농사꾼(기업)에게 농사(경영)를 잘 지으라고 닦달하는 데는 열성이었지만 몇 년 뒤를 대비해 어떤 우량종자(핵심업종)를 심을 것인지, 수확량을 늘리려면 어떤 비료(핵심 기술)를 써야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계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이 눈앞의 부실을 털어내는 데만 치중한 탓에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빅딜’이 꼽힌다. 과당경쟁 방지를 명분으로 반도체 등 7개 업종을 대상으로 정부가 앞장서 추진했지만 당시 ‘성과물’은 지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현대와 LG의 반도체 부문을 합쳐 출범한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는 엄청난 부실덩어이로 전락했고 항공 철도차량 등 통합법인들도 채권단의 고민거리다.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엄두를 못 내면서 세계 선두권 업체와의 기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연구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의 근본 목적은 기업 경쟁력을 키워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자는 것”이라며 “기업 개혁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빅3-마이너그룹간 격차 더 벌어져▼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 부문에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재계의 양극화와 외국계 기업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재계의 지형도는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현대 대우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거대 재벌이 맥없이 무너지거나 공중 분해됐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중견그룹 중에도 자금난을 못 견디고 쓰러지는 업체가 속출했다.

97년 이후 30대 그룹에 속한 적이 있는 44개 그룹 가운데 16곳이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등을 통해 규모가 대폭 축소되거나 해체의 운명을 맞았다.

30대 그룹 중 삼성 LG SK 등 이른바 ‘빅3’와 ‘마이너’ 그룹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3개 그룹의 자산이 30대 그룹 중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32.4%에서 올해 38.6%로 높아졌다. 지난해 빅3 계열사들은 11조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나머지 30대그룹들은 8조원의 적자를 냈다.

외국 자본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외국계기업이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비중도커졌다.노키아 한국휴렛팩커드 한국바스프 등은 지난해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50대 기업에 견줄 정도의 수준이 됐다.

초산 카본블랙 등의 외국계기업 점유율은 70%가 넘고 살충제 종묘 맥주 필름 등의 분야에서도 50%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계 기업의 약진에 대해서는 선진 경영기법의 전수와 외자 유치라는 긍정적 측면을 중시하는 시각과 단기 수익에만 골몰해 경제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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