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대외비 '재정전망 시나리오'

  • 입력 2001년 9월 12일 03시 48분


본보가 단독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향후 재정전망 보고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던 ‘안정 재정’이 앞으로 위협받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기획예산처의 용역을 받아 작성한 신뢰할 만한 대외비 보고서라는 점에서 파장이 일 전망이다. 당장 기획예산처 및 재경부 등 정부당국에 대한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가채무 급증문제는 ‘핫 이슈’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심상찮은 나랏빚 증가추세〓이 보고서는 정밀한 모형을 동원해 5가지 시나리오를 만든 뒤 이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예상되는 중앙정부 채무 증가추세를 산출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분석결과를 보면 정부가 앞으로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중앙정부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KDI가 세금과 연금 등 세입과 세출변수를 꼼꼼히 추정해 가장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한 기본모델(시나리오Ⅰ)에 따르더라도 중앙정부 채무는 2005년 232조7000억원, 2008년 318조1000억원, 2011년 400조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11년의 중앙정부 채무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5.1% 수준.

이는 공적자금(정부보증채권)의 경우 이자만 갚고 원금은 차환(借換)하면서 당장 정부가 떠안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다. 또 중앙정부 채무와 함께 국가채무를 구성하는 지방정부 채무는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팽창재정 겹치면 재정은 통제불능으로 악화〓KDI 보고서는 정부보증채권 104조원을 2003년부터 5년간 원금의 80%까지 갚는다고 할 경우 2011년의 중앙정부 채무가 GDP의 47.1%인 537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정부가 공적자금 원금을 갚지 않고 감세정책을 택하면 GDP의 44.5%인 507조7000억원으로 늘고 특히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할 경우 10년 후 빚 규모는 무려 7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결과는 충격적이다. KDI가 최근 재정경제부 주관으로 열린 ‘비전 2011 프로젝트’에서 시나리오별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대신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Ⅴ만 내놓은 것도 이 보고서가 지닌 폭발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만한 재정정책의 위험성 경고〓이번 KDI보고서가 던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최근 정부가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는 재정확대 정책이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 정부가 두고두고 재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정부가 나라살림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적자금 원금상환을 늦출 경우(시나리오Ⅴ) 10년 뒤 중앙정부 채무를 250조원 내에서 묶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경기악화로 일정수준의 재정동원이 불가피한 데다 특히 정부가 중산층 및 서민층의 복지를 늘리기 위해 건설 교육 건강보험 대북경협 등의 분야에서 ‘선심성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낙관적인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이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 “단기적으로 복합불황이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경제위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시나리오별 재정전망을 시도하고 이를 기초로 정책과제를 공식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순활·최영해·선대인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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