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노조 '동의서'진퇴양난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45분


“근로자들의 절반은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닙니다. 그런데 노조가 동의서를 굳이 안 쓰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우자동차가 부도처리된 뒤 1주일째 공장가동이 중단된 부평공장. 18일 찾아본 부평공장에는 활기찬 기계소리 대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노조 조합원의 발걸음만 부산했다. 공장의 침묵이 길어지는 만큼 노조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한 현장 감독자의 말처럼 현재 많은 대우차 사원들이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이미 18일까지 현장 근로직 150여명을 포함해 모두 250여명이 퇴사했다. 그런 마당에 구조조정에 대한 동의서를 안 써주겠다고 버틸 만한 명분도 실리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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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 앞으로 사원들의 E메일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80%는 격려하는 것이고 20%는 왜 동의서를 안 써주느냐는 것이지요.” (최종학 대우차 노조 대변인)

“노조가 뭐하고 있는지, 제대로 선택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요.” (김일섭 노조위원장)

특히 군산공장과 창원공장의 경우 “우리는 워크아웃 이후에도 매일 2교대를 하며 잘 돌아갔다. 왜 노조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입장이다.

“그런데 어떤 노조가 조합원을 자르겠다는 데 동의할 수가 있겠는가”라는 것이 현실적인 노조의 고민이다. 현재 대우차 노조 집행부는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통해 당선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동의서를 써준다는 것은 제너럴모터스(GM)가 손쉽게 대우차를 ‘점령’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력감축 규모가 당초 알려진 3500명이 아니라 6500명 수준이라는 ‘설’이 돌고 있어 “부평공장을 폐쇄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버틸수록 공장 재가동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협력업체의 연쇄부도로 창원 및 군산공장마저 가동중단될 위험은 커진다. 실제로 월말 자금결제일이 시작되는 25일을 전후로 해서 협력업체의 자금난은 한계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대우차가 월말까지 결제할 진성어음 규모는 약 3600억원.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 모든 부담은 협력업체가 져야 한다.

특히 대우차 납품규모의 20%를 차지하는 한국델파이는 25일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 320억원을 결제해야 한다. 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 2, 3차 협력업체에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차 채권단은 이와 관련, 주초에 모여 논의할 예정이다.

사측이나 채권단도 노조의 동의서를 요구만 할 뿐 적극적으로 노조 설득에 나서지 않고 있다. 대우차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그 때문.

대우차 부평공장 마당에 쓸쓸히 세워져 있는 라노스 후속모델(T―200)과 누비라 후속모델(J―200) 등 거의 개발이 끝난 신차들이 ‘달리고 싶다’고 시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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