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제정책]경제 연착륙보다 금융안정 무게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08분


23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의 가장 큰 특징은 인플레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저금리 유지에 대한 의지를 강도 높게 천명했다는 점이다.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11%에 이르는 등 지표만 놓고 보면 경기가 여전히 상승국면이지만 통화 고삐를 조일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기업의 자금경색이 심각한 상황에서 장기금리가 치솟으면 기업도산과 금융기관의 부실 증가로 이어져 안정적 성장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논지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 기조는 올해초 마련된 ‘재정긴축-금융신축’이라는 종전의 정책조합이 그대로 지속된다. 통화긴축을 통한 경기 연착륙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한국은행의 입장을 고려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통화량을 신축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은 단기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금융시장 여건이 급변한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만기연장이 제대로 안돼 중견기업의 도산설이 유포되는 판국에 장차 현실화 여부가 불투명한 ‘물가불안’을 염려해 긴축으로 전환하는 것은 적절한 처방이 아니라는 것.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기 전에 서둘러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틀을 마무리지으려면 원활한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

하지만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비용 측면의 인플레 압력은 급격한 경기상승과 함께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재정적자 규모를 당초 예산편성 때의 18조원에서 10조원으로 줄이기로 한 것은 민간 부문에 대한 통화는 넉넉히 공급하더라도 정부 부문만은 돈줄을 죄어 물가상승 압력을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연간 성장률 예상치는 6%에서 8%로 높아졌지만 하반기 성장률이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6%대라는 점에서 경기과열 논란은 당분간 수그러들 전망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으로 일단 경기 연착륙보다는 구조조정 추진과 금융시장 안정에 무게를 두는 쪽을 택했다. 경제정책은 ‘선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100점짜리 모범답안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지만 결과에 따라서는 논란을 빚을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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