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로비파문]워크아웃기업 문제점

  • 입력 2000년 6월 5일 19시 25분


동아건설 고병우(高炳佑)회장의 선거자금 로비사건이 재계와 금융계를 긴장시키고 있다.‘정상기업도 아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게 세간의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워크아웃기업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채권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이 어마어마한 국민의 혈세를 워크아웃기업에 지원하면서 관리를 얼마나 소홀히 해왔느냐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채권은행단이 부실대기업에 대해 기업을 회생시키거나 아예 퇴출시키는 등의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면서 부실만 키워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몰라요”〓5일 동아건설에 파견된 채권단 경영관리단은 오후에 동아건설측에서 “영수증을 첨부해 후원금조로 지급했다”고 발표한 이후 부랴부랴 자금장부를 뒤지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회사측이 경영관리단에 제출한 어떤 장부에도 후원금에 대한 지급명세표는 없었다. 경영관리단측은 “워크아웃기업에서 정치후원금을 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도 자금지원사실을 그동안 까맣게 몰랐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자금지원을 받는 워크아웃기업은 자금집행에 앞서 채권단 경영관리단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있으나 마나한’ 규정으로 전락했다. 규정은 그렇게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자금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단 이 같은 상황이 동아건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워크아웃기업은 자금집행을 한 다음에 통보해버리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아 자금통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커져만가는 도덕적해이〓은행권은 고회장이 국내에서 워크아웃을 실시한 이후 은행권이 선임한 첫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실제 이번 동아건설의 경우를 보면 동아건설 노조측의 임금인상요구와 기존 임원진의 조직적인 반발 때문에 채권단이 선임한 전문경영인이 제대로 워크아웃기업을 장악하지 못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심지어 다른 워크아웃 업체들이 ‘동아건설도 저러는데 우리도 조금 봐달라’는 식의 심리가 팽배해 있다”고 밝혔다.

워크아웃기업인 미주실업 박상희(朴相熙·기협중앙회장)회장이 건국대에 20억원대의 학교발전기금을 내겠다고 약속한 것도 대표적인 모럴 해저드에 속한다.금감원은 최근 경영관리단이나 워크아웃기업의 경영진이 고급승용차를 몰고 집무실을 호화롭게 꾸미는 등의 모럴해저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비난 때문에 워크아웃 실태점검까지 벌이기도 했다.

▽대안없는 워크아웃〓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있어서 워크아웃의 성공여부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은행권이 부실여신 100조원에 대해 일단 기업을 살린 뒤에 빌려준 자금을 받겠다고 채권유예를 해 준 것이다. 그러나 워크아웃기업의 모럴해저드와 채권단의 관리소홀로 기업회생이 안되고 부실이 증가할 경우 금융권의 부실이 또 다시 증가하고 한국경제의 회복은 요원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池東炫)연구위원은 “워크아웃기업의 모럴해저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단죄하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며 “채권은행단도 워크아웃기업을 결정할 때부터 신중해야 하며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회생가능성 여부를 판단해 워크아웃기업의 과감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래정·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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