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받은 금융사 '정책협조-주주이익'싸고 고심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세금환수가 우선이냐, 주주이익이 우선이냐.’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던 대그룹 계열 금융기관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 투입됐던 천문학적인 세금을 시급히 회수, 추후 구조조정 재원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금융사들은 세금 환수과정에서 불거질 수도 있는 주주들의 반발이 두렵다.

▼정부 후순위채 매입 요구▼

98년 종금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됐던 한화종금. 당시 이 회사에 수천억원을 투입했던 정부는 최근 관계사인 한화증권에 대해 투신권의 후순위채나 이자율 3% 안팎의 증권금융채권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예금자보호법상 부실금융기관 대주주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하는 데다 △금감위의 각종 인허가 지침상 대주주 관계 금융사가 새로운 업종에 진출하거나 업무영역을 확대할 경우 구조조정 재원을 부담하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 금감위는 여기서 확보한 재원을 대한 및 한국투신의 부실정리에 투입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미 지난해 대한생명 인수전에서 이같은 제한에 묶여 도중하차한 전력이 있다. 금융계에서는 한술 더떠 ‘시장에 이미 진출한 금융사라고 하더라도 유가증권 발행 등 일상 업무에서 금감원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98년 계열 종금사를 퇴출시키며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한솔그룹도 지난해 12월 한솔상호금고가 부곡금고를 인수, 정부인가를 받으면서 1000억원 이상의 후순위채나 증금채를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금감위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위는 “과거 부실 금융사를 운영하면서 국민의 세금을 받아썼던 대그룹 관계사들이 금융업에 진출할 경우 이같은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

▼위험도 높아 주주반발 우려▼

문제는 후순위채나 증금채 등은 투자위험이 높거나 이율이 낮아 해당 금융사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 98년 제일은행 전직 임원들에 대해 법원이 ‘부실대출로 인한 소수주주들의 피해를 보상하라’고 판시한 이후 금융기관 임원들은 소수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투자행위를 엄격히 자제해온 것이 사실. 이 때문에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후순위채 등에 투자했다 손해가 현실화되면 ‘정부정책에 협조했다가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극단적 현상도 완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같은 공적자금 반환방침이 ‘소수주주 이익에 배치된다’는 지적에 대해 “대주주가 직접 나서 계열사 주식을 정리하면 해결될 수 있다”며 당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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