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銀 선정]평화銀퇴출 건의, 노총의식 막판 살리기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32분


16일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국민 주택 신한 한미 하나은행에 비밀지시가 떨어졌다.

‘퇴출은행의 인수후보로 선정됐으니 자산부채인수(P&A)작업을 준비하라.’

당시 여론의 관심은 이틀앞으로 다가온 퇴출기업 발표에 쏠려 있었으나 금감위의 관심은 벌써 퇴출은행쪽으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금감위는 며칠전 국내외회계법인으로부터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미만 12개 은행에 대한 실사결과를 받아본 터였다.

국민 등 4개 은행은 즉각 10명씩의 특별작업팀을 구성, 하나은행 연수원에서 공동으로 인수업무매뉴얼 작성에 들어갔다. 한미은행은 금감위로부터 연수원으로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금감위는 4개은행 퇴출은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1개 정도가 늘어날 경우 한미은행에 맡길 계획이었던 것.

금감위는 19일 “BIS 달성비율을 2%포인트씩 낮춰주겠다”며 부실은행의 국제업무 포기를 유도했다. 대동 동남 충청 충북 경기은행 등이 일제히 국제업무포기를 선언하고 나왔지만 충청충북등 충청권은행 중 1곳을 살리기위한 사전포석이었음은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금감위는 20일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인선을 끝내고 평가작업에 들어가도록 했다. 위원들의 명단은 로비를 막기 위해 극비에 부쳐졌다. 경평위의 작업장소도 ‘모처’라고만 알려졌다. 우연히 이들이 한국은행 인천연수원에서 작업중인 사실이 밝혀지자 금세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인수후보은행들이 1주일간의 작업끝에 인수업무매뉴얼을 작성해 금감위에 제출한 것은 23일. 금감위는 이를 바탕으로 경찰력까지 동원하는 비상사태 대비책 마련에 착수했다.

동남 대동은행에서는 하루 1천억원 이상씩 예금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임직원들이 연고자를 대상으로 무더기 대출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충청 충북 경기 동화은행은 지역 정치인이나 이북도민을 동원, 은행살리기 행사를 벌이며 정치적 압력을 가했다.

금감위는 26일 밤늦게 국민 주택 신한 한미 등 4개은행 관계자를 몰래 불러 최종 인수지침을 전달했다. 퇴출은행이 4개라는 소문이 설득력을 얻게된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이 27일 아침 대통령에게 들고 찾아간 경평위의 퇴출은행 명단에는 뜻밖에도 6곳이 적혀있었다. 평화 동화은행의 처리가 문제로 부상했다. 두사람은 고심끝에 충청 동화은행은 과감히 정리하고 평화은행은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평화은행은 한국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알려졌다. 힘겨운 ‘줄다리기’는 한번 더 남아있었다. 신한과 한미은행은 막판까지도 “경기 아니면 인수할 수 없다”고 버텼다. 김진만(金振晩)한미은행장은 “경기를 인수하지 못한다면 아예 P&A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텨 28일 아침 경기은행을 따냈다. 김승유(金勝猷)하나은행장은 28일 오후까지도 P&A를 거부하다 이금감위원장의 집요한 설득에 밀려 충청은행을 떠안기로 결정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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