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엔低 힘겨루기」…아시아國 『새우등 터진다』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55분


엔화가치 폭락과 관련해 미국 일본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여기에 엔화 하락으로 국내경기에 영향을 받고있는 중국은 그 책임을 미일에 돌리고 있다.

각자의 이익챙기기에 급급한 채 상대방에 수습책임을 미루는 이들 ‘고래’의 싸움에 ‘새우등’인 아시아 경제의 주름살은 깊어만 간다. 미국이 뒤늦게 재무부 부장관을 일본에 파견한다는 방침이지만 엔화폭락을 저지해 아시아경제 부양대책을 마련할지는 미지수다.

‘일본발 경제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필리핀은 올해 성장목표를 3.5%에서 2.5%로 1%포인트 낮췄다.

경제우등생 싱가포르의 올 2·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말레이시아도 올 1·4분기 13년만에 처음으로 1.8%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아시아 금융위기로 이미 치명타를 입은 아시아 경제는 엔화가치 폭락으로 자칫하면 결정타를 맞게 된다. 아시아 경제회복은 엔화 안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IBRD)은 16일 “아시아가 깊은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의 경기침체가 이 지역 국가들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통상백서도 “엔화약세로 일본발 통화위기가 재발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아시아 경제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제회복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일본에 강도높은 엔화 지지정책을 요구하는 것도 아시아 경제의 붕괴가 가져올 재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엔화 지지에 앞장서려 하지 않고 있다.

‘약한 엔화’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비난이 높아지자 하야미 마사루(速水優)일본은행총재는 “엔화약세가 아시아 각국 통화가치하락의 원인이 아니다”고 변명하고 나섰다.

지난해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의 뿌리가 94년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 아시아 각국은 중국의 정책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약세에 의지해 경제를 꾸려나가려는 일본이나 책임은 떠넘기면서 궂은 일은 피하려는 미국의 자세 모두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룽지(朱鎔基)중국총리는 최근 “미국은 엔화사태를 한발 빼고 지켜보면서 중국에 대해서만 환율유지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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