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고비 함께넘자①]부실방치땐 장기불황 초래

  • 입력 1998년 6월 7일 20시 44분


70년대의 남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하느냐, 최근의 멕시코처럼 국가부도 위기에서 1년여만에 경제회생의 계기를 잡느냐.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부른지 7개월째에 접어든 우리 앞에는 이 두갈래 길이 놓여 있다.

“어느 길로 가느냐는 6∼9월의 4개월간 경제개혁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러나고 싶어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김대식·金大植중앙대교수)

그만큼 한국경제의 상황은 심각하다.

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금융기관 자기자본 감소와 대출 감축으로 이어져 기업 부도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말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규모는 1백20조∼2백조원에 이르러 자기자본을 완전히 잠식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지경이다.

“부실의 골이 너무나도 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루빨리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서로를 얽매고 있는 부실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견디기 힘든 장기불황이 불가피하다. 6월이 그 갈림길의 시점이다.”(엄봉성·嚴峰成한국경제연구원·KDI부원장)

1∼3월의 국내총생산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 감소한 것은 우리 경제 성장잠재력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올해 연간으로도 마이너스 4%대의 성장을 예측하는 국내외 전문기관이 적지 않다.

생산 및 소비 위축과 금융경색으로 올들어 4월말까지 1만2천개의 기업이 부도를 냈다. 하루에 1백개씩 쓰러진 셈이며 상장기업의 6%가 부도를 냈다. 실물경제의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안된 상태에서는 어떤 대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갈라진 논바닥에 물동이로 물을 준다고 되겠느냐. 수로를 터줘야 한다. 구조조정의 시급성이 여기에 있다.”(최범수·崔範樹KDI연구위원)

“현재의 상황은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물경제가 침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나마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 국제신인도와 한국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면 낫다.”(외국계은행 관계자)

그동안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까지도 금융과 기업의 부실이 드러나면 국제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 그러나 사실은 부실을 덮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신인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구조조정’은 각 부문의 도덕적 해이만 증폭시켰을 뿐 제대로 성과를 거둔 것이 없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실 금융기관은 고금리를 내걸고 예금을 끌어모아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콜자금으로 운영, 이자놀이에 몰두하면서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은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금융부실 속에서 버젓이 이루어진 도덕적 해이의 한 행태다.

대상의 라이신사업, 삼성의 중장비부문, 한화의 발전소사업 매각을 빼고는 재벌그룹의 제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최고경영자들은 아직도 부실의 심각성과 그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는 6·4 지방선거가 끝나자 드디어 본격적인 구조조정 착수를 선언했다.

외국계 컨설팅사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한번도 스스로 판단한 적이 없는 금융기관의 아마추어적인 자질과 구조조정 대상의 반발이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부실 대기업 정리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달 5대그룹 계열사를 넣으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은행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5대그룹 계열사까지 넣은 부실기업명단 발표가 20일로 미뤄졌다.

그런가 하면 노동계 일각에서는 ‘근로자만 피해자’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과연 노동운동을 위한 것인지, 정말로 더 많은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구조조정은 새 정권 집권후 1년내에 하지 않으면 못한다. 금융 재계 공공부문 모두 마찬가지다. 멕시코 영국 뉴질랜드 등 어느 나라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1년이 넘으면 심각한 사회적 반발 때문에 개혁이 무너질 것이다.”(김주형·金柱亨LG경제연구원상무)

실제 95년 2월 IMF 구제금융을 받은 멕시코는 세디요대통령의 강한 개혁의지와 노사정합의를 바탕으로 강도높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1년3개월만에 경제성장률을 플러스로 반전시켰다.

태국도 우리보다 훨씬 신속하고 광범위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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