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시대/고용안정-경제회생]두마리토끼 잡을순 없다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대량 실업과 고용불안 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당선자 앞에 놓여있는 과제중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중의 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당선자가 맞닥뜨리게 될 고용불안 상황은 60년대 경제개발을 본격화한 이래 가장 심각한 실정이며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역감정 해소나 정치발전 등의 사안과 달리 고용안정은 경제회생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와 부분적으로 상충된다. 어쩌면 고용안정과 경제회생 중 어느 한쪽은 일단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기로에 서 있다. 김당선자는 선거운동 당시 『집권하면 실업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6개월간 해고중지, 임금동결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형편은 그같은 공약을 실현하기엔 이미 너무도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 이제 김당선자 스스로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2년간 유예키로 했던 정리해고제의 즉각적인 도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본입장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는 우리 경제에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고 그 핵심 내용 중 하나가 고용조정 활성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 근로자의 희생을 불러올 제도들의 과감한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학적으론 「고용 안정과 경제 회복을 동시에 이루겠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부실기업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막상 인원정리는 하지 못하게 한다면 「마부가 한손으론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리게 하면서 한손으론 고삐를 당기는」 모순을 빚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당선자는 이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노동전문가들은 우선 김당선자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다 잡을 수는 없는 상황」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즉 어떤 과제가 더 본질적이고 시급한 과제인지를 명확히 선택,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리해고 법―현실 따로 ▼ 사실 IMF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 곳곳에는 오랫동안 대청소를 안한 집안처럼 고용조정의 여지가 상당부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말로는 기업에 『손쉬운 인원감축에만 의존하지 말라』고 주문할 수 있지만 국제경쟁속에서 어떻게 하든 생산단가를 낮춰야하는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절감이라는 수단을 아예 외면하기도 힘들다. 정리해고 문제만 해도 그렇다. 3월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제 시행을 98년말까지 유예해 놓았고 선거운동 당시 김당선자를 포함한 세 유력후보들은 이 유예조치를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예돼 있는 근로기준법 조항보다 훨씬 폭넓게 정리해고를 허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모순된 상황에서 일선 사업장에선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동위원회 제소, 법정다툼 등 숱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젠 노사에 대한 유불리(有不利)를 떠나 어떤 방식으로든 명확한 교통정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임금삭감―감원 택일해야 ▼ 정부와 각 연구기관은 기업도산과 불경기, 신규 채용감소로 98년엔 올해보다 실업자수가 최소한 30만명 이상 늘어나 85만∼1백만명에 달하고 위장실업자 등을 합치면 1백25만∼1백7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방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섯집에 한집꼴로 아예 가계수입원이 끊기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김당선자는 이같은 대량 감원사태를 피하기 위해 「임금동결과 해고자제를 맞바꾸는 질적 구조조정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동결은 현 수준의 생산원가 유지를 의미하므로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의 경우엔 그다지 설득력 있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구조조정을 겪게 될 대부분의 기업이 「감원을 최소화하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방안」과 「현 임금수준을 유지하되 대규모 감원을 하는 방안」중 하나를 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이 두가지 방안중 어느 쪽을 택하든 근로자에겐 뼈를 깎는 내핍을 강요하는 것이고 그 고통만큼 노동계의 반발과 사회불안도 커질 것이다. 김당선자가 22일 미국정부대표단과 만나 『실업사태를 최대한 억제하되 그래도 안될때는 해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민주노총은 「총력투쟁」 운운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사관계마저 분규에 휩싸이면 수출경제는 끝장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노동전문가들이 가장 절실히 당부하는 대목이 근로자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가 먼저 정부조직과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 대한 과감한 기구축소와 인원조정을 통해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 재벌을 비롯한 사용자와 특권층이 솔선수범하고 고통분담을 하도록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예를 들어 임금삭감에 앞서 기업주가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을 사내 복지기금에 내놓고 내핍생활을 한다면 상당수 근로자들도 고통분담을 감내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당선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이 바로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이라는 것. ▼ 노사정 합의도출 필요 ▼ 전문가들은 또 김당선자 본인이 직접 한국노총은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와도 만나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주문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선한승박사는 『노사정(勞使政) 합의 도출이 절실하다』며 『상대하기 쉬운 대학교수나 모아놓는 위원회 대신 대통령이 직접 껄끄러운 노사 양측 실세들을 모아 설득하고 대타협을 이뤄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당선자는 재임기간중 1백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선 창업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행정규제의 철폐와 창업 및 재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첨단산업 벤처산업 등에 집중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실직자에 대한 직업교육훈련 서비스를 대폭 강화해야한다. 직업알선 전산망의 미비 등 행정서비스의 부족으로 인해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새 정부에서 더이상 존속해선 안된다. 현재 우리의 실업사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이다. 김당선자는 우선 눈앞의 원성(怨聲)을 피하려 하기 보다는 확고한 고용정책 방향을 정립, 노사 양측을 설득하면서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전념해야 한다. 설령 단기적으론 실업을 악화시킨 대통령으로 비난 받더라도 결국은 실업 문제를 해결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겠다는 각오가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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