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들 이젠「밖」에서 뛴다…경영진 해외본부장으로 파견

  • 입력 1997년 12월 22일 08시 11분


18일 대우그룹 한 계열사 사장의 장녀 결혼식이 열린 서울역 앞 대우센터. 경영 수완에선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모였다. 신랑 신부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모임이었지만 동시에 해외파견이 예정된 사장들끼리 작별인사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윤원석(尹元錫)중공업회장 서형석(徐亨錫) ㈜대우무역부문회장 장영수(張永壽) ㈜대우건설부문회장 등 그룹내 소(小)회장으로 있던 사람도 눈에 띄었다. 30여년 동안 동고 동락하며 대우그룹의 성장 신화를 일궜던 준(準)창업공신들이지만 지난 8일 확정된 회장 사장단 인사에 따라 보름뒤면 전세계 23개국으로 흩어져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국내의 대우그룹만한 기업 기반을 각 나라에 뿌리 내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 「말년」에 이역의 객지 생활에 나서야 하는 불안감과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비장함 때문일까. 해외 사장들은 여느 결혼식 하객과는 달리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우의 이번 파격 인사는 월급쟁이 사장들이 위축될 대로 위축된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전격적으로 단행됐다고 해서 뒷말이 많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4명(모로코지역본사 사장 2명 포함)의 최고경영자들을 한꺼번에 해외로 파견하는 것에 「질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기업 세계화의 「종착역」이 다국적화라면 각 지역 본사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들도 역시 최고경영자급에서 찾는 게 낫다는 논리다. 김영삼(金泳三)정부 들어 재벌 총수들은 너도나도 세계화를 외쳤다. 그러나 기업조직 및 인사체계를 보면 역시 말 뿐이었다. 그룹마다 경쟁적으로 지역본부를 신설했지만 사업계획 작성, 투자자금 조달, 핵심간부 인사는 여전히 서울 본사의 통제를 받았다. 해외본사를 맡게 된 경영진들은 스스로 「물을 먹고 바깥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한 게 사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은 해외지역본사 사장이 현지에 벌여놓은 모든 사업부문을 총괄하는 식이다. 적어도 관할 지역에선 김우중(金宇中)회장과 같은 존재가 되는 셈. 다만 신규사업을 벌일 「종잣돈」만은 서울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대우그룹 만큼 세계화를 벼르고 있는 그룹은 삼성. 12일 인사에서 기존 미주 일본 유럽 중국 동남아 등 5대 지역본부와 별도로 동유럽과 독립국가연합 지역을 대상으로 6개의 「컨트리마케팅」지역을 신설, 사장급을 「컨트리매니저」로 선임했다. 지역본부엔 김수택(金洙澤·미주) 유상부(劉相夫·일본) 신세길(申世吉·유럽) 이필곤(李弼坤·중국) 등 기라성같은 최고경영진이 포진했다. 지역본부장은 사업계획 입안에서부터 자금집행 인사 등에 전권을 갖고 이번에 발탁된 컨트리매니저는 해당국에서 그룹을 대표, 계열사 통합마케팅을 전개한다. 재계 3위인 LG그룹도 95년부터 미주(구자극·具滋克사장) 중국(천진환·千辰煥사장) 동남아(육동수·陸東洙사장) 등지에 지역본부를 세워 계열사간 협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본부지역도 조만간 유럽 일본을 추가한 5극체제로 확대할 방침. 다만 지역본부장의 권한범위가 다소 애매하다. IMF시대를 맞아 적잖은 알짜배기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사냥감으로 오르내리는 지금 우리 재벌들이 계열사간 시너지효과를 앞세워 해외에 「문어발을 뻗는」 것은 고무적이다. 어차피 치를 경제전쟁이라면 반드시 국내 시장만을 전쟁터로 만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 전문가들은 우리 재벌들의 공략대상이 대부분 개도국에 국한돼 있어 세계화가 자칫 「제삼세계화」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시장개방으로 개도국의 문턱이 갈수록 낮아지면 시장선점 효과는 온데간데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오히려 개도국시장에서 조차 세계적인 다국적기업과 생사를 건 승부를 벌여야 하는 힘든 처지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박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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