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한국기업 對北교역 물밑 지원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김기만기자] 북한노동당비서 黃長燁(황장엽)은 동반망명한 심복 金德弘(김덕홍)여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과 함께 남한기업인들의 대북(對北)교류를 은밀히 지원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과 합작사업을 했던 국내기업인 C씨는 『황비서는 지난 93년 이후 북한 밖에서 상당수의 남한기업인들과 접촉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현실과 자본주의 체제를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C씨는 특히 『황비서의 장남 경무씨도 남한기업인들과의 교류에 종사했으며 이로 인해 지난해 12월 북한당국으로부터 문책을 당했고 이것이 황의 망명을 촉진한 한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대 정치경제학과 출신인 김은 황이 김일성대 교수 및 총장이었을 때의 제자였다. 이때 시작된 두사람의 인연은 동반망명으로까지 이어졌다. 황은 작년 11월의 서신에서 김을 「전우」로 지칭, 깊은 동지애를 나타냈다. 김일성대 교무부 지도위원, 노동당 중앙위 지도원 및 자료연구실 부실장 등으로 일하던 김이 지난 95년초 북경(北京)에 설립된 여광무역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황의 배려 때문이었다. 황이 다목적으로 설립한 이 회사의 대표에 분야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김을 앉힌 것. 이어 김은 역시 황이 설립한 국제평화주체재단 총재까지 맡게 됐다. 김은 주로 북경과 심양(瀋陽)에서 활동하며 외양으로는 북한과의 교역이나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을 연결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황이 거들어 주었다. 황과 그의 장남이 직접 중국에 나와 한국기업인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북한당국이 한국기업인의 신원담보를 원하면 황이 대신해주기도 했다. 이 무렵 북경에 설립돼 한국기업의 북한진출을 상담해주고 북한산 금(金) 등의 판매사업을 해온 명흥유한공사 대표 박모씨(중국 조선족)는 황의 수양딸로 국내기업인들과 황, 김 등을 연결해 주었다. 국내 기업인들 가운데는 황, 김, 박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황이 박에게 보낸 편지사본을 가진 사람도 있다. 여광무역은 황이 한국 및 중국기업인들을 만나는 창구이자 황의 외화조달 창구이기도 했다. 황의 또다른 외화조달창구는 국제평화주체재단이었다. 황과 김은 이 재단의 모금을 위해 해외동포는 물론 한국기업인들과도 폭넓게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황과 김을 접촉했던 한 국내기업인은 『여광무역과 황비서는 북한관련 국내기업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며 『국제평화주체재단의 모금을 둘러싼 대형 금전사고가 문제가 돼 황의 망명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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