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전시장-달빛 사무실… 상상력이 빚은 ‘옥상의 반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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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전동 14층 오피스텔의 ‘옥상라움’

오피스텔 옥상 왼쪽이 설계사무실, 오른쪽 뒤편 시설이 엘리베이터와 주차타워가 있는 옥탑이다. 오른쪽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나무 덱(deck)을 깔아놓은 야외 전시장을 거쳐 왼쪽 사무실로 들어가게 된다. 사무실의 야외 전시장 쪽에는 접이식 유리문을 달아놓아 바깥 공기와 햇빛이 잘 들어온다. 여기저기 보이는 고양이는 설치미술가 김경화 씨가 시멘트로 만든 작품 ‘길고양이들’이다. 작은 사진은 노정민(왼쪽) 오신욱 라움 공동대표.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오피스텔 옥상 왼쪽이 설계사무실, 오른쪽 뒤편 시설이 엘리베이터와 주차타워가 있는 옥탑이다. 오른쪽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나무 덱(deck)을 깔아놓은 야외 전시장을 거쳐 왼쪽 사무실로 들어가게 된다. 사무실의 야외 전시장 쪽에는 접이식 유리문을 달아놓아 바깥 공기와 햇빛이 잘 들어온다. 여기저기 보이는 고양이는 설치미술가 김경화 씨가 시멘트로 만든 작품 ‘길고양이들’이다. 작은 사진은 노정민(왼쪽) 오신욱 라움 공동대표.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옥상은 야누스적이다.’

사회학자인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서 ‘옥상의 공간사회학’에서 옥상의 이중적인 면모를 짚었다. 옥상은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일상생활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옥상은 사용(私用)과 공유(共有)의 공간이다.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겐 저항의 무대이고, 구조와 탈출의 관점에선 희망의 장소이지만 추락과 사고의 시각에선 절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버리는 공간이자 가꿈의 대상이다.

부산의 부부건축가인 오신욱(44) 노정민(42) 건축사사무소 라움 공동대표는 옥상의 밝은 면모를 발견하고 신작 ‘옥상라움’을 완공했다. 옥상라움은 지난해 말 부산의 번화가인 부산진구 부전동에 14층짜리 오피스텔을 지으면서 옥상에 마련한 라움의 설계사무실과 야외 갤러리인 ‘아트스페이스 라움’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쪽이 옥탑, 아래쪽이 사무실, 나머지가 야외 전시장이다. 사무실 옥상에는 텃밭을 가꿀 계획이다.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쪽이 옥탑, 아래쪽이 사무실, 나머지가 야외 전시장이다. 사무실 옥상에는 텃밭을 가꿀 계획이다.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공사를 하던 어느 날 옥상이라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어요. 도심 빌딩의 옥상은 엘리베이터와 주차타워용 옥탑만 덩그러니 놓고 버려두는 공간이죠. 잘만 활용하면 형편이 어려운 건축가나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개는 용적률을 꽉 채워 짓지 않기 때문에 작은 사무실을 지을 면적은 남아 있거든요.”

부부 건축가는 남아 있는 법정 용적률의 한도 내에서 사무실 면적 195.47m²(약 59평)를 뽑아내 1억 원에 분양받았다. 옥상 면적(395.12m²)의 약 절반 크기다. 이 오피스텔의 평당 분양가가 850만∼880만 원임을 감안하면 매우 싼 가격이다. 건축주로서는 어차피 버릴 공간이었기 때문에 헐값에 내준 것이다. 이들은 공사비 1억 원을 들여 7명이 일하는 설계사무실을 짓고 나머지 옥상 공간은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배롱나무 연산홍 남천이 심어져 있는 화단도 있다.

옥상라움의 배치는 이곳이 원래 옥상임을 강조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서 내리면 하늘이 열려 있는 야외 전시장을 거쳐 사무실로 들어가게 돼 있다. 사무실 건물은 옥탑과 분리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곳이 옥상임을 일깨워 준다.

옥상라움은 주변에 2.4m 높이의 난간을 설치해 불안한 전망보다는 닫힌 안정감을 택했다. 그래서 중정형 주택에 들어와 있는 듯 조용하고 아늑하다. 사무실에 있으면 야외 전시장 쪽으로 달아놓은 접이식 유리문을 통해 바깥 공기와 볕이 들어온다. 북쪽으로 낸 커다란 창으로는 도심 전망이 내려다보인다.

옥상라움의 미덕은 옥상의 혜택을 독점하지 않는 데 있다. 야외 전시장은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무료로 이용한다. 오피스텔 입주자들과 외부인들도 이곳까지 올라와 작품과 조경과 도심 전망을 감상한다. 격주 토요일 오전에는 접이식 유리문을 열고 회의실과 야외 전시장을 연결해 건축과 문화 세미나도 연다. 내년에 구청의 옥상 텃밭 가꾸기 사업비 지원을 받아 사무실 옥상에 텃밭을 꾸며놓으면 공용 공간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처음엔 사람들이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어질러 놓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전시해 놓으니 함부로 하지 않더군요. 옥상에 문화 시설이 있고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작업실이 있다고 하니 분양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옥상을 활용하면 도시 가용 면적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요. 높이가 같은 저층 건물의 경우 옥상 공간을 연결해 쓸 수도 있습니다. 옥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옥상에 대한 상상력만 있다면.”

부산=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옥상라움#오신욱#노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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