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백조가 못된 ‘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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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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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투자 없이 만든 저예산 영화… 호평에도 상영관 배정 홀대로 흥행 참패

《 최종 관객 수 4만5454명. 예술 영화의 스코어가 아니다. 8월 30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상업영화 ‘미운 오리 새끼’가 받아 든 흥행 성적표다. 당초 시사회 뒤 이 영화에 대한 관객과 평론가,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한 포털 사이트 관객 평점에선 10점 만점에 9점이 넘는 점수를 받았다. “코미디와 감동을 잘 버무렸다” “곽경택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미운 오리 새끼는 끝내 백조가 될 수 없었다. 원인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친구’(2001년)로 관객 818만 명을 모았던 곽 감독도 스크린 독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 》
○ 대기업 투자 없어 홀대

곽경택 감독의 ‘미운 오리 새끼’는 시대의 아픔과 아버지의 의미를 코믹한 이야기로 풀어낸 수작이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극중 주인공 낙만의 아버지가(오달수·왼쪽)가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군부대에 난입했다가 도망치고 있다. 트리니티엔터테인먼트 제공
곽경택 감독의 ‘미운 오리 새끼’는 시대의 아픔과 아버지의 의미를 코믹한 이야기로 풀어낸 수작이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극중 주인공 낙만의 아버지가(오달수·왼쪽)가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군부대에 난입했다가 도망치고 있다. 트리니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작품은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이른바 영화계 ‘큰손’들의 투자 없이 제작됐다. 그 결과 CJ E&M의 계열사인 CGV,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롯데시네마 등에서 스크린 배정에 불이익을 받았다.

이 영화의 개봉 첫날 전국 스크린 수는 163개였다. CJ E&M이 투자해 최근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689개였다.

적은 제작비(순제작비 8억 원)와 마케팅비도 극장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의 제작사 관계자는 “마케팅비를 한 푼도 못쓴 영화에는 스크린을 많이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배급을 담당한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롯데시네마조차 “출연 배우 인지도가 낮고 군대 이야기를 담아 여성 관객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상영관 인터넷 예매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보통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는 관련 극장 사이트에서 개봉 2주 전부터 예매가 가능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이틀 전에야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예매율이 낮다는 이유로 극장 측은 스크린 수를 더 줄였다.

○ 스크린 잡아도 ‘퐁당퐁당’ 상영

어렵게 스크린을 확보하고도 다른 영화와 교대로 배정되는 ‘교차상영’ 탓에 온전히 관객을 모을 수 없었다.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 시간대에 상영되기도 했다.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극장의 경우 개봉일에는 하루 총 9회가 상영됐지만 3일째부터는 교차상영이 시작됐다. 4일째부터는 관객이 많은 오후 6시, 8시 상영이 빠졌고, 8일째부터는 하루 두 번만 상영됐다. 본보는 CGV 측에도 ‘미운 오리 새끼’의 상영 일지를 요청했지만 CGV는 ‘대외비’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교차상영 문제가 저예산, 독립영화들의 ‘날개’를 꺾고 있지만 제도적 방지책은 아직 없다. 교차상영 여부가 전적으로 극장의 재량권에 속하는 데다 제작사는 불공정 사례가 발생해도 ‘미운털이 박힐까봐’ 항의할 엄두를 못 낸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2009년부터 운영하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의 접수 건수는 지금까지 단 2건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신고한 제작사가 극장을 의식해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극장에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스크린 독점을 규제한다. 규정에 따르면 한 곳의 멀티플렉스(복수의 스크린이 있는 상영관)는 한 영화의 프린트(상영 필름 또는 디지털 파일)를 두 벌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

한 제작사 대표는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영화들의 최근 성적이 안 좋아 관련 극장의 스크린 몰아주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작은 영화의 상상력이 사라지면 큰 영화의 기반도 없다”고 우려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미운 오리 새끼#저예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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