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그의 진실을 무대에 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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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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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12月12日’ 연출 김낙형씨-주연 배수빈씨

연극 ‘이상 12月12日’에서 이상 역으로 출연하는 배수빈 씨(왼쪽)와 극작 및 연출을 맡은 김낙형 씨. 배 씨는 “좋은 연출가를 만나 평소 거리감이 느껴지던 이상의 예술세계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웃었고 김 씨는 “문득 던지는 한마디에도 탄탄한 기반을 느낄 수 있는 꽉 찬 배우”라고 화답했다. 사진 제공 화성시문화재단
연극 ‘이상 12月12日’에서 이상 역으로 출연하는 배수빈 씨(왼쪽)와 극작 및 연출을 맡은 김낙형 씨. 배 씨는 “좋은 연출가를 만나 평소 거리감이 느껴지던 이상의 예술세계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웃었고 김 씨는 “문득 던지는 한마디에도 탄탄한 기반을 느낄 수 있는 꽉 찬 배우”라고 화답했다. 사진 제공 화성시문화재단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새로운 창작극이 12월 관객을 찾아간다. 12월 18∼26일 경기 화성시 화성아트홀에서 초연되는 ‘이상 12月12日’이다. 경기도공연창작활성화 프로젝트로 제작되는 이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바로 ‘세 남자’ 때문이다.

물론 그 첫 번째 남자는 ‘저주받은 예술가’의 한국적 원형으로 각인된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본명 김해경)이다. 스물일곱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그의 삶은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예술작품으로 재조명되어 왔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년)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년), 연극 ‘오감도‘(1996년)와 ‘이상, 열셋까지 세다’(2000년), 소설 ‘굳빠이 이상’(2001년)…. ‘12月12日’은 스무 살 나이의 김해경이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발표한 자전적 소설의 제목이다.

두 번째 남자는 이번 작품을 쓰고 연출한 김낙형 씨(40)다. 그는 올해 두산그룹 창립자 박두병 회장 100주기를 기념해 제정된 연강예술상 공연 부문 초대 수상자다. ‘40세 이하의, 장래가 촉망되는 공연·미술 분야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이 상을 턱걸이 연령에 받으면서 3000만 원의 상금과 7000만 원 상당의 신작지원비도 받았다. 지난해엔 자신이 재구성하고 물체극과 신체극을 접목한 실험극 ‘맥베스’로 카이로국제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남자는 이상 역의 배우 배수빈 씨(34)다. 지난해 TV드라마 ‘찬란한 유산’으로 스타덤에 올라 올해 ‘동이’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매력남이다. 주로 영상매체에서 활약하던 그가 2007년 ‘다리퐁 모단걸’ 이후 두 번째 연극출연작으로 ‘이상 12月12日’을 택했다.

73년 전 고인이 된 이상을 만날 수는 없기에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한창 연습 중인 김낙형 씨와 배수빈 씨를 만나 두 사람이 그려낼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은 구체적 역사를 통해 자각된 문명이 아니라 서구에서 이식된 문명을 살았던 인물, ‘모조의 세계’를 살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자신의 건강, 심지어 조국이란 구체적 현실보다는 자신의 머릿속 예술세계에 모든 것을 던지지 않았나 합니다.”

김 씨는 연강예술상 수상 이후 첫 연출작이 될 이번 연극의 주인공에 대해 냉철했다. 이상의 지독한 독설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세를 읽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중에 다들 한 자리씩 하는 다른 문우(文友)들과 달리 ‘최후의 모더니스트’라고 불릴 만큼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배 씨는 “평소 서정주나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지만 이상의 시에 대해선 거리감이 있었다”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이상을 한번 제대로 이해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더 어렵게 느껴졌다”고 솔직한 고충을 드러냈다.

“이상의 예술과 인물에 대해 사람마다 너무 해석이 달라서, 과연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그의 삶 자체는 비범하기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격변과 혼란의 시기의 정점에 서 있던 사람으로서의 이상을, 비슷한 혼돈의 시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실험성 강한 연출가와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배우가 만나 빚어낼 이상은 전위적이거나 감각적이기 전에 매우 인간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 씨가 ‘소통이 가능한 연출가’라고 평한 김 씨는 “새로운 해석을 더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연구된 이상의 다층적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씨가 ‘속이 꽉 찬 배우’라고 평한 배 씨는 “단순히 이상을 추모하는 공연이 아니라 이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031-267-888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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