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에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3>신도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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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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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자다브 지음·김영사

《“무엇보다 소누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우리보다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 자식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리고 이 억압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들에겐 신분이란 게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인도인 다무는 1930년대 초 카스트제도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한 뒤 이렇게 말한다. 소누는 그의 아내. 두 사람은 이른바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던 달리트(억압받는 사람들)였다. 달리트는 사제인 브라만, 군인 계층인 크샤트리아, 상인 계급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로 이뤄진 카스트제도에도 들지 못한 계층이다. 그래서 ‘아웃카스트’로 불리며 노예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다무는 인도 서해안에 위치한 마하라슈트라 주의 불가촉천민 가운데 가장 숫자가 많은 마하르 집단 출신이다. 전통적으로 마하르 집단의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비천한 마을 하인’의 잡무를 맡았다.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나르고 마을의 담장을 손보는 일이었다. 마을의 길을 쓸고 관리들의 심부름을 하고 가축의 시체를 마을 밖으로 치우는 것도 이들의 의무였다.

대부분의 마하르 사람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예스카르’라고 불리던 이 의무를 따랐지만 다무는 예외였다. 뭄바이에서 철도 근로자로 일하면서 카스트제도의 부당함에 눈을 뜬 그는 1930년 어느 날 예스카르의 의무에 저항했다. 마치 노예를 부리듯 그에게 이런저런 부당한 지시를 하는 순경에게 반항하다 곤욕을 치른 그는 아내 소누를 데리고 밤길을 틈타 뭄바이로 향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뭄바이로 향하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불가촉천민의 어려운 현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는 사람들, 배고픈 가운데서도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 등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다무와 소누는 실존인물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들의 아들인 나렌드라 자다브. 불가촉천민 집안에서 태어나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로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인도의 신분제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핍박받고 있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으로 아버지 다무의 덕이었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1948년 7월의 어느 날, 다무는 뭄바이에 있는 학교에 아들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학교를 찾아갔다. 빈자리가 없다고 하는 교장의 대답에 그는 학교 바닥에 드러누웠다. 경찰에게 끌려갈 각오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한 교장의 배려로 아들은 입학을 허락받았다.

다무가 운명에 순응하는 다른 달리트들과 달랐던 것은 특별한 한 사람의 영향 때문이었다. 바바사헤브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1891년 마하르 집단에서 태어난 암베드카르 박사는 집회를 통해 달리트를 일깨웠고, 이들을 통일된 세력으로 조직해 사회적 평등의 목표를 향한 정치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는 카스트제도를 변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자 “힌두교도로 죽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50만 명에 가까운 달리트들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무는 암베드카르 박사의 집회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자신을 비롯해 자식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고 노력했다. 평생토록 주어지는 환경에 지배되길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이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펼쳐진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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